가능성(可能性)에 관하여
가능성(可能性)에 관하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0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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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현상은 최초 우주가 존재하게 된 것부터 지금 이 순간 산소와 수소가 반응하여 물이 되는 것까지 가능성의 확률에 의한 것이다. 이것이 작은 우주라고 하는 인간행동을 다루는 교육으로 들어오면 학습자의 변화될 가능성을 ‘잠재력(潛在力)’이라고 하여 모두가 희망을 갖게 해준다. 여기에 어리둥절할 감언이설이 숨어있다.

최초 우주가 생성되는 반물질(反物質)의 상태가 확인 직전에 있어서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데, 잠시 접어두고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이야기로 돌아가 물질의 최소 단위 원자 개념을 정리한다. 모든 원자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둘레에 전자가 돌고 있고, 다시 원자핵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는데 양성자의 수에 따라 원소기호가 정해진다.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의 전자들이 반응하여 안정된 상태의 물이 되는데, 이때 전자들이 반응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확률에 의한 것이다.

수학적으로 가능성은 확률(確率)로 풀이한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가능성을 확률로 계산한다.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은 50%이고,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0.000000(?)%이다. 이 확률이 물리학의 최첨단 양자론에 들어가면 이 세상 모든 물질의 인과론(因果論)도 결국은 우연에 의한 작용의 시작으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산소와 수소가 반응하여도 낮은 확률 상태에서는 물이 안 되고 그대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결국은 우주 자체가 존재하게 된 것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낮은 확률로 나온 것이다.

이 확률을 어떤 사람이, 어리건 늙었건 간에 사람이 될 가능성의 확률로 계산하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의 짓이다. 그냥 가능성이 ‘있다 없다’의 양자택일로 결정지어야 한다. 다시 이 확률을 엉뚱하게도 신의 존재에 관한 확률로 비약하면 우리는 어지럽게 된다. 십 수 년 전에 우리나라 모 종교계통의 유명한 대학에서 천체물리학의 어느 분야를 강의하는 교수가 TV방송에 나와서 지구가 23.5도 기울기를 갖고 자전하면서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는, 즉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게 하는 것은 우주 생성부터고 이렇게 되기까지가 확률적으로 너무나 낮은 우연이라는 것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확률은 우리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의 모든 부속품, 몇 천 개를 하늘로 휙 던졌을 때, 그 부속품들이 제자리에 들어가 결합하여 굴러갈 수 있게 조립되어 땅에 떨어지는 것보다도 더 낮다면서 ‘신이 있어서 지구를 이렇게 만들어놓지 않고서는 될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그는 신이 있어서 우주를 만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교육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대전제로 하고, 오늘 교단에서 애를 쓰며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가장 확률을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냥 정성을 쏟아 가르치기만 했지 사람 될 가능성은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즉 투자가치를 계산하지 않는다. 이런 학생들을 놓고 대학입학 사정관들이 장차 대학에 들어와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장차 사회에 나가 국가발전(민족발전은 아님)에 한 몫을 할 인재가 될 만한지 못한지를 사정(査定)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사람 될 가능성을 온갖 꾀가 다 들어가는 기록과 면접에서의 인상(印象)으로 판단하는 것보다는 양자이론도 확률이 들어가니까 입학시험도 지필검사 하나만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양자이론에 따른 동률확률의 공평성으로 하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멀지 않았으니 사람 될 가능성에 붙여 새겨두고 싶은 말이 있다. 부처는 세상을 하직하며 제자에게 지금까지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토록 깨달음을 얻도록 가르쳤고, 스스로도 고행 7년 만에 깨달음에 이르렀는데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는 말은, 첫째가 너희들 모두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정진 하라는 것이고, 둘째가 깨달음의 내용이 다 다를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에서, 직장의 업무에서 이런 가능성을 수용하면 여기가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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