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최연소 총장이 되어(1)
《제101화》 최연소 총장이 되어(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0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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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40대의 교문수석을 어디로 가서 일을 하게 해야 할지 여러 분들이 고심했었다. 특히 대통령께서 ‘나의 통치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 수석을 아무데나 가서 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각별한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문교부 차관 정태수씨의 주선이 또한 시의 적절했었다. 충북대학과 강원대학의 총장 임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어디에 가서 일을 하면 좋겠느냐는 의사 타진이 나에게 들어왔다. 나는 즉석에서 충북대학에는 갈 수 없다고 대답해주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의 은사이신 정범모 교수가 현재 총장으로 계시는데 연임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강원대학은 우리나라 자연과학, 세부적으로 식물학의 틀을 다지는 데에 크게 기여하신 이민재 교수가 4년 임기를 끝내고 있었다. 그때가 12월 중순 쯤 되었는데 나에게 청와대를 나와 바로 부임하라는 독촉까지 하였다.

아마도 국립대학 총장 임명장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기는 내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의전실에서 대통령을 감회 깊게 만나서 임명장을 받고 몇 마디 격려 말씀을 들었다. 이때 지도자로서의 큰 덕목이 대통령의 얼굴에 나타났다. 1년 전, 새 세대 육영회 초대 회장직에 이순자 영부인이 취임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을 때, 무표정하던 얼굴은 사라진지 오래고, 비록 비선(秘線)을 통해 K씨가 정신문화연구원장에 취임한 것이 문제가 되었을지라도 큰 그릇으로 나를 포용, 흡수하는 모습이 역역했다. 당시 K교수가 대학총장으로 계실 때, 비상계엄령을 해제하라고 요구했던 것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직접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K교수가 우리나라 동양사학 연구에 일본을 거치지 않고 서양의 방법론을 직접 접목시킨 학자적 업적은 대단한 것이어서 정신문화연구원장으로서 최적격 자였던 점을 인정하시는 것이었다. K 교수는 일찍이 동경제국대학에 진학하여 동양사학을 공부하였고, 서울대학에서 대학과정을 마친 뒤에는 독일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당시로서는 드문 경력을 갖고 있었다. 내가 추천했던 분이어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앞 회에서 얘기했던 A씨의 나에 대한 ‘배신과 잔혹함’으로 생긴 일인데 그 일로 청와대를 떠나 과거의 나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어 오히려 다행인 셈이 되었다. 나는 일을 찾아다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강원대학교는 내가 일할 여백이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대학발전의 모형을 펼쳐 보는 나의 집념을 시험할만한 곳이었다.

대통령께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나에게 금일봉을 건네주시면서,

‘이 수석, 아니 이 총장 당분간 춘천에서 일요일은 빼놓고 집에서 저녁 먹을 생각은 하지 마시오.’ 하며 크게 웃으셨다. 부연하면, 그 돈으로 강원도 사람들과 저녁을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저항을 녹여내라는 충고였다. 나는 그대로 하였다. 저녁만 먹은 것이 아니라 한 말에 의병대장으로 대단한 독립운동의 업적을 남긴 분이 춘천 인근 지역 동네 출신이어서 비석을 세워놓았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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