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소상 - 암각화 속 돼지형상 일관성 한 눈에
멧돼지 소상 - 암각화 속 돼지형상 일관성 한 눈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0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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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경남 통영 한전 경남지사 신축공사 현장서 발견
튀어나온 입·구부러진 귀·등선 등에 조형의지 담겨
유적조사단 “신석기 시대 의례용으로 제작된 듯” 추측
그 동안 국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동물 소상 중 주목을 끄는 것은 경남 통영시 욕지도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출토된 멧돼지상이다. 이 상이 출토된 경위는 이렇다. 1988년 7월에 경남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 528과 529번지에 한국전력공사 경남지사가 지역내 욕지출장소 사옥 신축공사 정지 작업을 하던 중에 신석기 시대의 유물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에 국립진주박물관이 중심이 되어 1988년 12월 21일부터 1989년 4월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이 유적을 발굴하게 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모두 네 개의 층위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4층의 무포함층과 1층의 경작층을 제외한 2와 3층에서 돌무지 시설, 조가비 층, 무덤, 각종 토기, 생활용 석기, 몸돌 그리고 격지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유 적지 중 이와 같은 층위 이외의 흐트러진층에서도 토기와 석기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두 개의 흙으로 빚은 돼지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굴보고서에 따르면, 이 소상은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멧돼지를 형상화한 듯하다고 하였다. 또한 그 소상의 생김새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두 개 중 하나는 주둥이가 튀어나왔으나 꼬리와 주둥이 부분이 결실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주둥이 부분이 결실되었다고 하였다. 이 두 번째 소상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이루어져 있는데, 손으로 집어서 등날과 귀를 세웠고 꼬리와 뒷다리 부분에 각각 한 개 혹은 두 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고 하였다. 주둥이가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멧돼지를 만든 것 같다고 소개하였다.

그 유물들의 성격을 정리하면서, 이 상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였는데 이들은 당시 사람들의 신앙이나 수렵생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비교적 모양을 잘 갖추고 있는 두 번째 상의 크기를 살펴보면, 몸통의 지름 2㎝에 길이 4.2㎝ 정도이다. 이렇듯 이 멧돼지상의 크기는 손가락 한두 마디에 견줄 만큼 아주 작은 소상이다. 이 상이 비록 크지 않고 또 부분적으로 망실되어 있지만, 남아 있는 부분을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였는지 분명하게 살필 수 있다. 튀어나온 입, 구부러진 두 개의 귀 그리고 등선 등을 통해서 이 상을 빚은 제작자의 조형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동물에서도 살필 수 없고, 오직 돼지에게서만 드러나는 것이다.

이 상이 출토된 문화층이 애매하게도 흐트러진층이라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 속 문맥을 통해서 살피건대, 이 유적지에는 밀감나무 구덩이가 있으며, 그곳은 문화층이 교란되어 있는 듯하다. 아마도 흐트러진층은 이렇게 교란된 곳을 이르는 듯하다. 물론 이와 같이 문화층이 흐트러진 곳도 2층과 3층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뒤섞여 발견되고 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2층과 3층 사이의 문화적 상이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상기할 때, 멧돼지 소상은 원래 2층 또는 3층의 어딘가에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돼지 소상은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무언가의 목적에 의해 제작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현 재 이 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물론 출토 유적과 시기가 병기되어 있다. 크기가 워낙 작고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세부 디테일을 꼼꼼하게 살피기는 어렵다. 남아 있는 부분을 통해서 살펴보면, 발이나 꼬리 등은 없는데 이는 원래 제작할 때부터 그렇게 의도하여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꼬리와 뒷다리 부분에 각각 뚫려있는 구멍이 원래 무슨 역할을 하였는지도 불분명하다. 만약에 그것이 꼬리나 다리를 끼워 넣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면, 왜 앞다리 부분에는 없는 지도 궁금한 점이 아닐 수 없다. 혹시 앞다리 부분에도 구멍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몸통만 흙으로 빚은 다음 꼬리와 다리는 다른 것으로 만들어서 조립하였을 가능성이 결코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돼 지 소상 가운데 남아 있는 이 구멍들이 만약 꼬리나 다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구멍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도 앞으로 밝혀내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보고서 속의 도면을 참고로 하여 이 형상의 신체 비례를 살펴보면, 전체 길이 4.2cm 중 머리는 1.3cm 정도로 추정된다. 떨어져 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고려하면, 수치가 이보다 조금씩은 더 늘어나겠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을 통해서 살필 때 머리는 몸통 전체 길이의 약 1/3 정도인 셈이다. 그리고 엉덩이 부분은 거의 수직선을 이루고 있다. 몸통의 지름과 신체 길이는 두 배를 약간 넘는 모습이다.

외 관상의 수치들은 이 상이 어떤 비례를 이루고 있는 지를 살피게 하는데 머리와 몸통 사이는 1:2, 몸통의 지름과 몸통 길이 사이는 1:2 정도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까 몸통이 비교적 토실한 셈이다. 이와 같은 신체의 기본적인 체형은 대곡리 암각화 속의 돼지 형상과 큰 차이가 없다. 조사 보고서는 이 상이 의례용 소상이라 판단하고 있다. 이 상이 욕지도 신석기 주민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띠고 있었고 또 이로써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하였는지 살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그들의 시각 속에 들어 온 동물들을 이와 같은 모양으로 또렷이 인식하였고, 또 그것을 매우 간결하게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십 여 년 전에 발견된 이 돼지 소상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던 여성 소상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소조상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이들에 대해서는 어떤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살펴 본 그물자국이 찍힌 파편이나 사슴이 그려진 파편 등과 함께 신석기 시대 한반도 동남부 지역 사람들과 그들의 물질문명 그리고 조형예술의 세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주었다. 더욱이 이와 같은 형상들은 답보 상태에 빠진 대곡리 암각화의 조형성과 양식 그리고 편년 연구의 절대적인 준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와 같은 파편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주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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