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청와대 수석비서관 시절(8) - 프로야구, 산고를 겪었다
《제93화》 청와대 수석비서관 시절(8) - 프로야구, 산고를 겪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4.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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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비서관들과 점심 식사하는 자리에서 프로 스포츠 얘기를 꺼낸 일이 있었다. 그 때 옆에 앉아있던 이학봉(李鶴捧)민정수석이 프로야구를 만들면 성공할 것이다라고 거들어주었다.…이상주박사는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정치적으로 어떤 뚜렷한 의식을 갖고 프로야구를 추진했던 것은 아니다. 야구가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였고, 그 자신이 야구를 좋아했으므로 프로야구 탄생을 첫손에 꼽았던 것이다.…’

나는 절대로 무리하게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내부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시지요. 잘 알겠습니다.’

LG에는 기획분야 사장을 맡고 있는 이헌조 사장이 있었다. 그는 한국미래학회 회원이었기 때문에 잘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며칠 전에 프로야구를 구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LG는 부산에서 치약을 생산하고 금성라디오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부산을 연고지로 하고 프로야구에 참가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며칠 후에 회사 이사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으니 거기에 안건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아마도 프로야구는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금호 그룹의 박회장이 광주(호남) 연고지를 맞지 못하겠다고 하니 그쪽 연고가 있는 기업이나 사주를 새롭게 물색해야 했다. 당시로서는 호남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큰 연고기업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지역에 기업이 있어도 서울에 거주하지만 그 지역 출신 사주(社主) 두 사람을 찾아냈다.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과 신용호 교육보험 회장이었다. 신 교육보험 회장은 프로야구에 참여할 뜻이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해태그룹 박 회장에게 간청해야 했다. 박 회장이 광주(호남)를 연고지로 두는 프로야구 구단을 맡는다고 하자 부산 롯데 그룹에서 틀어졌다. 호남 지역의 롯데제과 대리점들이 들고 있어났다.

‘이제까지는 전라도에서 과자 장사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그것마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준호 부회장이 그것을 태산 같이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신부회장에게 일본에 있는 신격호 회장을 만나 의논해보라고 권유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부회장은 일본에 가서 신격호 회장을 만나고 왔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프로야구에 참여해’라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루는 두산그룹 박용호 회장이 나를 만나자고 하였다. 바로 사무실로 찾아갔더니 박용호 회장과 동생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충청도가 연고지가 아니고 경기도가 연고지다. 처음에 인천을 ‘현대’가 맡는다고 해서 양보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연고지를 ‘삼미’가 맡는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새로운 요구를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와 엄살들이 들어가기 마련인 대화를 끌다가 결국은 타협점을 찾았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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