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청와대 수석비서관 시절(4) - 지금 역사가 말한다!
《제89화》 청와대 수석비서관 시절(4) - 지금 역사가 말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4.0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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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2일(토) 문화일보, ‘프로야구 10년 비사(秘史)’에 잘 못 알려진 내용이 기사화되었다. 지금의 프로야구가 역사를 말하고 있어서 진실을 밝힌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다.

‘…이상주 교문수석비서관을 찾았다. 인사가 끝나자 이상주 비서관은 광주사태에 대한 관심도를 스포츠 쪽으로 돌리기 위해 두 사람을 불렀다고 했다. 최순영 회장은 기업인으로 체육행정을 맡았으므로 조언을 듣기 위함이었고, 박영길감독을 부른 것은 일선에서 뛰고 있으므로 양쪽 얘기를 모두 듣기 위해서였다. “광주사태로 민심이 흩어졌으니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고 싶어 여러분을 뵙자고 했습니다. 축구는 우리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스포츠이고 야구는 고교 야구 붐을 타고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귀국하시면 브리핑을 해야 하는데 자료가 있습니까?”…’

여기에 커다란 오해가 들어있어서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을 정리한다. 당시 야구계에선 프로야구를 창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있어왔으나 아무도 착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전한 여가선용을 위한 온 국민의 생활체육으로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경제발전의 수준을 보았을 때, 프로야구를 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이 고등학교 야구와 같은 베이비 야구에만 열을 올리고 성인야구는 시들한 실업팀에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하루속히 넘어서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도 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직접 하였고, 미국 유학 시절에는 거의 주말마다 외국인 방문자 위원회(Foreign Visitors Council)가 무료로 나누어 주는 ‘공짜표’를 얻어 메이저 리그 경기를 관람하곤 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이런 경기들을 화제(話題) 거리로 삼아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성적, 특정 선수의 기록, 상대팀의 전략 분석 등등이 관심 대상이었다. 그들은 직장 상사를 헐뜯거나 남을 비방하지 않거니와 정치 이야기를 하여도 다음 선거에는 누가 나오고, 누가 장?차관이 되느냐와 같은 이야기는 화제 거리로 삼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서 계획서를 작성하는 가운데 프로야구 창설의 여러 취지의 하나로 ‘국민의식의 탈정치화’라고 쓴 것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오해를 하여 위와 같은 기사로 나오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쓰리 에스(sex, sports, screen)로 정부가 지고 있는 정치적 부담을 벗으려 한다.’, ‘국민의 지역감정을 스포츠를 통하여 완화시키려 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라는 논리로 프로야구를 반대하는 언론인들이 많았다.

당시 실업야구 롯데자이언츠의 박영길 감독이 TV에 나와서 야구의 프로화를 열 올려 주장하는 장면을 본 일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되지 않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어서 인상 깊게 머리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박영길 감독을 찾았었다. 문화일보 기사에는 70년대 초에 이 호헌(KBS 야구 해설위원)씨가 프로야구를 창설하려고 계획서를 짜놓은 것이 있고, 야구협회 전무를 했던 이용일 씨가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추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어서 박영길 감독의 지방순회경기 경험담에서, ‘일본의 경우처럼 우리나라에도 프로야구가 생기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화젯거리가 생길 것으로 봤습니다.’에 내가 맞장구를 쳤다고 나온다. ‘맞습니다. 우리가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프로스포츠를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까?’ 이건 아니었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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