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서울대학 선비가 국보위로부터 호출을 받다(3)
《제83화》 서울대학 선비가 국보위로부터 호출을 받다(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3.2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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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 생각하시더니, ‘어디에 가서 일하던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지 청와대라고 안 된다면 이 나라는 누가 맡아서 다스릴 것인가? 그 문제는 이 선생(정 선생님은 나를 부를 때는 이렇게 불렀다.)이 결정할 문제지 내가 가라마라 할 일이 아니네.’ 라고 결론을 내리셨다. 정 선생님은 언젠가 ‘선비는 정승 집 문간을 넘나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며, 제자들 앞에서 진정한 선비의 모범을 보여 오셨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시다니 기대치 않았던 의외의 말씀이셨다. 즉, 청와대에서 어떤 압력을 넣어도 학자로서 학문에 전념하라는 말씀이 있을 줄 알았었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오늘 청와대를 다녀오겠습니다.’

허화평 수석비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교수도 잘 알다시피 이 정부는 교육혁신과 문화·창달을 중요한 국정지표로 삼고 있어요. 이 교수 같이 유능한 사람이 새 정부에 참여해 주셔야지요.’ 허 수석의 얼굴에는 간곡한 요청이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내미는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대뜸 하는 말이,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모래 월요일부터 여기서 일을 하시지요. 모든 준비는 돼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식적으로 마쳐야 할 절차가 남아있었다. 서울대학교의 승인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였다. 총장을 만날 것인가 부총장을 만날 것인가 망설이며 알아보니 마침 총장은 출타 중이어서 이현재 부총장을 만나기로 하였다.

‘부총장님, 제가 이번에 서울대학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부에서 청와대에 교육문화수석비서관실을 처음 만든 모양입니다. 저더러 그 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부총장님 허락해주십시오.’ 머리를 숙여 인사로서 피치 못할 사정임을 보여드렸다. ‘아니, 여기 국립서울대학입니다. 청와대도 정부 기관입니다. 교수직을 휴직처리하고 파견 갔다 오시는 것입니다. 떠난다니 이상합니다.’라며 놀랐던 얼굴에 웃음까지 띠며 만류하면서 부연하였다.

‘다른 사립대학 교수까지도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임명 요청을 받으면 모두 휴직하고 나가시고, 국책연구소장인 경우만 겸직하던데요. 하기야 이제는 그 숫자가 많아지니까 인사관리가 어려워지긴 합니다만…’ 부총장의 다른 몇 사람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적극 만류하였다. ‘아닙니다. 제가 좀 생각해봤습니다. 이 자리는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최고 권력기관입니다. 학생들 보기에도 그렇고, 저보다 젊고 유능한 교수가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멈추고, ‘좀 건방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춘추(春秋) 좌전(左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진백벌진(秦伯伐晉)할 때, 제하분주(濟河焚舟)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문공 3년에 진(晉)을 치러 갈 때, 황하를 건너고서 타고 온 배를 모두 태워 돌아갈 배를 모두 강물에 가라앉혔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울대로 돌아갈, 후퇴할 자리를 마련해놓고 청와대에서 일하지는 않겠습니다. 전심전력하겠다는 저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부총장은 허락하였고, 이 일화를 여기저기에서 일하는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여 나를 아주 좋게 이야기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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