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코미디와 재미없는 코미디
재미있는 코미디와 재미없는 코미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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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문 태

논설실장

한 때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 지금도 분명히 국정 교과서인데 ‘선진국 미국으로 유학 가는 형을 배웅하러 김포 공항에…’라는 문구가 나왔었다. 시쳇말로 사대주의적인 문장이었다. 그것을 그냥 ‘외국으로 유학하기 위해…’로 바꾸어 나타 낸지 얼마 되지 않는다(필자의 자랑). 그래서 나라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어느 외국의 경우, TV 프로그램 평가회의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온 일을 소개한다.

대개의 TV 프로그램 평가회의는 어느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 ‘시청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에 신경이 곤두 서는 회의이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 시청자인 국민들이 TV 코미디가 재미있으면 TV보는 데에 시간을 빼앗겨 가족들과의 대화, 학생들의 독서, 개인의 운동, 기타 여가 활용 시간이 줄어들어 국민 교육·문화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TV 코미디는 재미없어도 되는 것이다.

지난 수 주 동안 우리나라 TV의 ‘뉴스 코미디’가 재미없었다. 재미없는 만큼 국민도덕교육, 국민윤리교육, 그리고 정치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 근거는 출연 코미디언도 아마추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희극 각본도 즉석 처리(애드 립)의 위태함을 겨우 면하는 정도이었다. 재미없었기에 국민들로 하여금 최소한 명상, 사색할 시간을 갖게 할 수 있었다.

코미디와 코미디언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서양에서는 무성영화 시절의 찰리 채플린을 손꼽는다. 그는 실수가 많다. 순진한 바보로서 모든 힘, 정치권력, 회사의 권력, 그리고 애인의 까탈스러움에도 대항한다. 그래서 관객에 다가 선다. 이 바보가 관객에게는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필자가 느끼기에, 구봉서보다 배삼룡이 더 인기가 있었다. 그는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넘어지고 자빠지고 시청자에게 또 하나의 위로가 되었다. 서양이나 우리나 그들의 연기를 볼 때마다 ‘나는 저 코미디언보다는 낫다’는 쬐그만한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에서 사람의 본성(本性) 중의 하나가 무의식적으로 ‘남의 밑에 놓여 있기 보다는 남의 위에 있기를 바라고, 더 크고, 더 길고, 더 무겁고(체중은 제외?)를 바란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면해본 일이 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여러 가지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면 재미있는 코미디, 그렇지 않으면 재미없는 코미디가 되는 것이다. 선거판의 코미디는 스트레스만을 쌓게 해준다. 나보다 똑똑하고 잘 난 사람들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시청자는 열등감에 빠진다.

외국의 어느 대통령 입후보자가 선거유세 중에 비행기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넘어질락말락한 일이 TV에 보도된 일이 있었다. 그 대통령은 낙선하고 말았다. 재미있는 코미디이었으나 정치가이기 때문에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권자보다 우월했다. 학벌, 재력, 역경을 헤치고 나온 강인함 등등이 유권자를 멀리 물러서게 했다. 게다가 ‘네 이웃을 사랑할 줄 알고, 네 이웃에 자비를 베풀 줄 알고, 그리고 네 이웃을 감쌀 줄 아는 비상(非常)한 코미디언’이 못되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코미디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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