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유학생활(6)
《제71화》 유학생활(6)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2.2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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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어찌 보면 나의 집념의 하나일 것이다. 비록 미국에 배우러 왔지만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과 이에 따른 실행은 미국 사람이건 다른 나라 사람이건 당연히 한국 사람끼리도 바르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 나의 평소 생활철학이다. 앞에서 소개했던 이야기, 도봉산에서 헌병들이 민간인들에게 주정을 부리며 행패를 부릴 때도 이런 판단에 따른 바른 행동을 끝까지 밀고 나갔던 일화가 하나의 예가 된다.

나의 생활 철학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사무실들이 밀집해 있는 다운타운에 가면 주차문제가 심각하다. 어느 날 아침에 뉴욕 주 교육청 사무실 근처의 동네 길가에 주차를 해놓고 퇴근길에 나와 보니 내 자동차의 옆문이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연락처나 전화번호를 남겨놓지 않았다. 주변을 자세히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전신주 하나가 비스듬히 놓여있었고, 내 자동차 옆에는 까만색의 조그마한 자동차 페인트 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에 전신주 운반 차량이나 까만색의 자동차가 사고를 내고 도망 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 다음 날, 미국 친구들과 함께 통신기 설치회사를 방문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더니 자기 회사의 작업 스케줄에는 그 시간과 위치가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러면 다른 차가 사고를 내고 뺑소니 친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주차했던 지역부터 조사해보아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이 동네는 가난한 동네, 다운타운의 주택지역은 대개가 빈민가이어서 조심하여 접근해야 했다. 주차했던 인근의 첫 번째 주택에 가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흑인이 나왔다. 그간의 경위를 말했더니 사고를 낸 차량을 알고 있으며 누구라고 바로 말하지 않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정보제공료, 돈을 주면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서 힌트를 잡고, 생각해보겠다고 하고서 그 동네 흑인들이 갈만한 인근의 이발소에 갔다. 당시의 우리나라 이발소와는 전혀 다른 시설이었다. 가난한 동네의 이 이발소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장면의 시설이었다. 머리를 자를 것처럼 이것저것 이발사에게 수다스럽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결국은 그 이발사의 차가 까만색이고, 지금은 고장 나서 정비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시절의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을 때도 이런 쾌감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범인을 잡은 수사관 또는 탐정과 같은 기분이 되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시치미를 떼고 이발소에서 나와 그가 말한 정비소를 찾아갔다. 거기서 내가 보관하고 있던 까만색 조각이 떨어져나간 문제의 자동차를 찾았다. 나는 까만색 조각을 증거물로 제시하고 정비소 주인에게 뺑소니 친 차 주인을 내가 고소하겠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실제 미국에서는 누가 어떤 시비 거리가 생겨 ‘sue’하겠다고 하면 질색을 한다. 그야말로 ‘법대로’가 이만저만 까다롭고 귀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비소에서는 그 흑인 이발사에게 연락하고, 그 흑인은 변호사를 개입시켜 변상조치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아마 보험회사의 협조를 받았던 것 같다. 하여간 미국에서도 끈질기게 사리(事理)를 밝혀 처리했다. 용서와 포용은 그 다음이었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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