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대학생활의 낭만(3)
《제58화》 대학생활의 낭만(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1.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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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누나(이 경분)는 부모 다음으로 나를 키워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미용학원을 다녀 미용사 자격을 따고 미장원에서 일을 하며 우리 집 살림에 보탬을 주고 나한테는 대학등록금은 자기가 책임을 질 것이라고 하면서 대학에 가라고 나의 등을 밀었다.

사범학교 3학년 말부터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우다가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를 시작한 것은 누나의 미용실이 있는 동래온천장의 작은 방으로 이사 간 뒤부터였다. 숙식을 누나가 챙겨주고 나는 공부만 하면 되었다. 하루 평균 4시간 잠을 자며 시험공부에 전력을 기울였다. 누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합격을 해야 했다. 절박했지만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안았던 것 같다.

부산고등학교에 다니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친구가 학교에서 받아온 프린트 물을 빌려다가 밤을 새워 공부하고 다음 날 돌려주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 친구는 좀 어려운 이과계통의 학과를 지망하였다가 낙방하고 나는 합격하였다.

내가 합격 했다는 말을 듣고 누나는 울었다. 그리고 나는 서울생활, 대학생활에 충실하였다. 양평군 구둔 면의 상록수 낭만도 지금 회고하니까 그렇지 가정교사, 서클 활동 등으로 정신이 없었다.

서울에서 첫 번째 가정교사자리는 부산에 피난 와, 길 건너편에 살았던, 시험 볼 때 머물었던 아주머니 집의 조카였다. 이것을 두고 인연이라고 하는 것 같다. 사범학교를 나오고 막 초임 교사로 발령 받으려던 참이었으니 자신있게 또 열심히 지도해주었다. 실력 있는 가정교사 선생님이 왔다는 소문은 다음 집으로, 또 다음 집으로 연결되어 숙식과 대학등록금까지 해결하며 4학년 1학기를 마칠 때까지 보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숙명적 인연이 기리고 있었다.

어느 일간지에 ‘전국대학생웅변대회’가 진명여고 3.1당에서 개최된다는 광고였다. 광고 위로 누나의 얼굴이 금방 겹쳐졌다. 그때 누나는 서울의 남영동 어느 미장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미장원 여주인이 젊은 정치인 김대중 선생의 부인이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치가는 웅변을 잘 할 것이고, 누나의 부탁으로 생동감 있는 웅변지도를 받을 수 있겠다고 마음먹고 누나에게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직 국회의원도 아닌 김대중 선생을 독대할 수 있었다. 김대중 선생은 준비해간 원고를 꼼꼼히 읽어주시고, 서대문구의 신촌 봉원사 숲에 가서 큰 목소리로 이렇게 이렇게 연습하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때 김대중 선생은 김상현 선생과 함께 대한웅변협회 이사로 있었다. 웅변에 관한 어떤 전문적 지식이 없으면 안 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전문적 지식으로 지도해주신 것이었다. 처음 가보는 신촌 봉원동의 봉원사 숲으로 혼자 가서 몇 번 연습을 하였다. 아마 조금은 자신이 생겼던 것 같다.

차례가 되어 힘차게 올라가 청중을 압도하는 제스추어와 함께 원고내용에 실수 없이 웅변을 마쳤다. 나는 발표도 보지 못 하고 공군 각종장교 예비소집 시험장소로 떠나야만 했었다. 대회 결과와 평가는 친구가 대신 남아서 보아주기로 했다.

결과는 약간 실망이었다. 3등으로 뽑혔다. 심사평은 몸동작이 너무 컸었다는 것이었다. 키가 커서 손해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키가 크니 주먹을 쥐거나 단상을 치는 동작이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을 고려해주지 안했다. 하여간 이 인연이 훗날 한림대와 청와대까지로 연결되었다. 대학생활의 낭만은 웅변대회 3등입상으로 꽃을 피웠다. /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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