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대학생활의 낭만(1)
《제56화》 대학생활의 낭만(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1.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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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浪漫)’, 영어의 로맨스(romance)를 한자의 소리로 나타내면서 생긴 낱말이라고 한다. 마치 코카콜라(Coca-Cola)를 한자의 소리로 ‘可口可樂’ 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낭만이라는 한자의 우리 말 훈을 보면 낭만적인 사람의 묘한 특성이 엿보인다. 물결(함부로) 낭(浪), 질펀할(게으를) 만(漫)이 낭만적인 사람, 대개의 예술인들에게서 보이는 풍부한 정서(감정), 사랑에 몰입하는 태도, 무엇보다도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며 공상적인 사고양식의 속성을 이루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옛날 서울대 문리대 마로니에 분수 밑의 연못에 금붕어가 헤엄치는 모양이 너무 좋아 같이 놀자고 옷 입은 채로 뛰어든 친구가 훗날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낭만주의 시인(詩人)이나 할 행동이었다.

나는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보내야 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소설 상록수(常綠樹)의 박 동혁과 같은 농촌계몽 봉사활동을 하였다. 나의 낭만이었다. 경기도 양평군 구둔면(당시로서는 전형적인 농촌)에 친구들과 함께 여러 가지 일손 돕기와 어린이들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였다. 안상현, 정순목, 송병순, 김혜정, 홍숙자, 이영희, 최OO 등등이었다. 3년을 계속 구둔면에 봉사활동을 갔던 이유는 안상현의 부친께서 매년 우리나라에 오는 구세군 구호물자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우리를 통해서 정확하게 전달해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뜨거운 낮 동안의 봉사 활동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 어느 여학생이 구둔면의 오래된 정자나무(느티나무) 아래에서 ‘산장의 여인’을 부르고 있었다. 가수 권혜경의 목소리를 닮아서 더욱 더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한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행가 가사가 실연(失戀)에 관한 것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착각하는, 억지로라도 자기 이야기라고 끌어들이고 싶어 했듯이 ‘산장의 여인’을 부르는 그 여학생은 주인공이 된 듯 한 기분에 젖어있었다. 나도 그런 환상과 공상에 젖어 있었다. 상록수의 박동혁과 채영신이 양평의 구둔면에 내려와 있다는 공상을 하는 낭만이었다. 농촌봉사활동을 마치면 바로 가정교사로 돌아가 주인 집 아이의 밀렸던 공부를 시켜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는데도 이렇게 서울의 대학생활에서 낭만을 즐겼다.

대학생활의 낭만은 전공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내가 직접 클럽(칠성회 클럽)을 조직하여 공부하고 놀기를 잘 하였다. 사범학교 시절에는 세 가지 활동(농구, 밴드, 문예)에 몰두하였다. 대학에 와서도 이런 창의적 클럽활동은 빠질 수 없었다. 모이면 영어로만 이야기 하기가 하나의 예이고, 전공하는 교육학 분야의 자율적 원서 읽기 클럽(SEC, Student Education Club)은 후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홍영화, 오홍림, 신세호 등이었다. 작고한 신세호 원장도 여기에 적극 참여하여 한 끗 영어 실력을 뽐내었다. 그가 훗날 미국 유학에서도 자신의 박사학위에 창의력 연구의 주제를 잡은 것도 이 클럽의 토론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즐겼다. 꿈이 있었다. /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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