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전공이 있어서 대학조직내의 정체감(正體感)이 행정직원보다는 분명하다. 항상 가르쳐야 할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고, 연구해야 할 일거리가 쌓여있다. 이에 비해 행정직원은 전문분야가 있되 조직 내에서 여러 부서로 순환근무를 해야 하고, 승진이라는 관료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여 총장으로서 이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된다. 나는 이 어려움을 ‘행정직원도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슬로건으로 직무와 관련된 대학의 야간학부, 야간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독려하며, 외국어 교육, 전산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였다. 이를 통한 자긍심과 만족도를 높이며 후생복지를 개선하였다. 울산대학교 부임 후 첫해부터 직원노동조합의 단일호봉제 요구가 조정되지 않아 한 달간 파업으로 치달았는데 이것은 당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유행과 같은 파업의 하나이었다.
행정직원의 전문성, 자긍심, 직무만족도, 후생복지와 더불어 총장이 지도자로서 보여야 할 덕목은 직원의 마음을 잡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성격적으로 낙천적인 힘에 의하여 비록 불같은 성격이지만 ‘그 때뿐이다’는 일관된 행동으로 일구어냈다. 좋은 예가 있어서 소개한다. 중견급의 행정직원이 전날 특근을 했든지 아니면 과음을 했든지, 낮에 근무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학교 인근의 목욕탕에 갔다가 나와 마주쳤다. 나는 세미나 준비로 밤샘을 하여 원고를 끝내고, 피로를 풀고 단정한 모습을 갖추려고 비서실에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목욕탕에 갔었다. 그 직원은 당황했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인사를 하여 울산대학교 행정직원인 것을 눈치 챘다. 마침 나는 옷을 벗지 않고 있어서 호통을 쳤던 것 같다. 그 직원은 도망가다시피 목욕탕을 나갔다. 그 때 뿐이었다. 나는 그 직원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데 행정직원의 관료적 분위기가 그 직원을 외롭게 만들었다. 총장한테 찍혔다는 것이다. 얼마 뒤, 우연하게도 직원들 순환 근무에서 그 직원이 지금까지 안 해오던 부서로 발령이 났던 것 같다. 찍혔다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오해되었다. 그러고서 반 년 쯤 지났을까 새벽에 학생들이 붙여놓은 대자보를 정리할 겸 버릇으로 학내를 순시하는데 어디서 본 듯한 직원이 인사를 하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어느 부서의 누구냐고 물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학교일에 자발적으로 나와 봉사하니 좋다고 담배를 권했던 모양이다.
울산대학교를 떠나고 한 참 있다가 모 교수로부터 행정직원들 간에 총장은 화를 내어도 그때 뿐이다 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모두들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지금도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직원의 실수는 그때뿐이었음을 재천명한다. / 정리=박해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