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인의 반말, 서양인의 높임말
동남아인의 반말, 서양인의 높임말
  • 김명석 기자
  • 승인 2010.11.03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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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유로 동남아쪽 사람들에게 전화를 받을 때가 간혹 있다. 동남아인들의 어눌한 한국어는 그나마 견딜만하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존칭을 생략하고 나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 개운찮은 뒷맛은 어쩔 수 없다. 그랬어? 안돼? 왜? 있어? 없어? 그런 식이다. 나의 깍듯한 존대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인들의 하대에, 뭐 문화적인 차이 때문이겠지, 아니면 한국 문화의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이겠지, 라고 나름대로 위안을 해보다가도 반말을 계속 듣다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전화 내용이, 주로 내가 정보제공자의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거래를 제안해 오는 경우에 짜증은 배가된다. 그럴 경우 “당신 언제봤다고 반말짓거리야?”라고 뱉어버리고 전화를 끊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이제 떠듬떠듬 한국어를 배우는 서양인들은 우리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동남아인들은 시종일관 반말짓거리일까, 하는 의문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뒷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듯한 충격적인 장면을 접하게 된 것이다. 버스 정류장 매점에서 물건을 사려는 동남아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대하는 우리나라 상인의 태도가 여간 고압적인 게 아니었다. 그 상인은 반말을 물론이고 성가시고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꾸 만지지 말고 안 살거면 가” “돈 있어?” “삼천원이야” 뭐 그런 식이었다. 그때 내 머리를 때리고 간 그 무엇. 그것은 바로, 저들은 우리가 가르친 그대로 따라한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한국어를 배우는 동남아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반말과 존대어가 주는 느낌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그저 배운대로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특히 노동 현장에서 우리가 동남아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히 가관이다. 동남아인들에게 하는 반말과 고압적인 태도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그들은 그게 바로 한국문화라고 인식하게 되고 백짓장 상태에서 우리 문화를 받아들인다. 예절과 존대로서 대한 서양인들이 우리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반말로 묻고 동남아인들이 존대어로 대답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겪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물건을 사고팔 때 인도인들은 돈을 건네는 방식이 좀 특이하다고 한다. 내가 아는 지인이 인도 상점이나 식당에서 물건을 사고 두 손으로 공손히 돈을 건넸는데도 인도 상인들은 거스름돈을 테이블 위에 휙휙 던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 지인은 처음엔 그들의 그런 태도에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가만히 보니 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가 그렇게 돈을 주고 받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쪽에서도 돈을 픽픽,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받은 주인은 거스름 돈을 또 그렇게 던지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부턴 그런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았다는게 그 지인의 설명이다.

돈을 주고 받을 때 두 손으로 주는 모양 자체가 그들에겐 오히려 이상할 수 있다. 문화적인 차이다. 우리가 동남아인들에게 존대받기를 원하지 않고 반말짓거리를 듣더라도 감정이 상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그들에게 반말을 하든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내륙에 위치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은 십여년 전부터 서양인들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건기가 시작되는 10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는 4월까지 수도 중심부는 이곳이 동양인지 서양인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행온 백인들의 천국이 된다. 그들은 웃통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며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그들에게 동양적인 예의범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백인들은 현지인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에 배려심, 그리고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혀 없어 보인다. 현지인들, 나아가 동양인들을 얕보고 깔보고 있다는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 배낭 여행객들은 서양인들의 그런 태도에 분개하면서도, 한국인들 또한 현지인들을 무시하긴 마찬가지다. 이율배반이다. 우리가 서양인들에게 대접받길 원한다면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동남아인에 대한 인종적인 차별의식부터 없애야 한다. 우리가 가르친 반말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김명석 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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