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의혹을 제기한 모든 누리꾼이 ‘왓비컴즈의 허황된 주장에 선동당했다’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타블로의 학력 의혹이 한국의 인터넷 문화 때문이며 ‘괴담에 선동당한 누리꾼’이라는 정형화된 공식은 미 쇠고기 광우병 파동때 촛불시위에 참여한 국민을 ‘선동당했다’고 표현했던 보수언론과 정부의 의견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보수언론은 인터넷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실명제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정부도 맞받아 인터넷이 저질 선동의 장이 되고 있다며 강력한 규제를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타블로 사태의 본질은 잘못된 인터넷 문화가 아닌 우리 사회의 불신 구조에 있다. 우리 사회의 불신이 부른 고비용의 댓가를 우리 스스로가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셈이다. 검찰도 언론도 믿지 못하는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최근 청문회에서의 장관후보의 위장전입과 쪽방 투기, 교수들의 논문조작과 표절, 장관 딸 특채, 총리 후보자의 거짓말, 수많은 철새 정치인들과 말 바꾸기 등에서 보듯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한 사회전반의 불신 현상이 온라인에서 그대로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이를 간과하고 이번 타블로 사태를 온라인상의 문제라고 폄하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타블로 사태는 몇 년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유명대학 졸업장을 위조해 정관계와 예술계를 뒤흔든 과거 사건이 학습효과가 된 것이다. 이러한 학습효과는 반복적으로 강렬한 의혹을 낳게 되고, 이런 의혹이 확산되어 마치 진실인양 확대재생산 되는 경향이 있다. 다만 확산의 도구가 인터넷이었을 뿐이다.
요컨대, 타블로 사건은 일면적인 접근이 아니라 논란의 근저에 있는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 불신주의, 연예저널리즘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성찰해보아야 한다. 섣부른 인터넷 책임론은 인터넷문화의 한 단면만을 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중구난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란 말은 원나라의 증선지가 지은 중국 고대사인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온다. 중국 주나라 시대 주(周) 여왕(勵王)이 백성들에게 강력한 철권통치를 자행하자 소공(召公)이란 신하가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甚於防川).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사람이 많이 상하게 되는데, 백성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를 막는 사람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왕은 소공의 이 같은 충언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백성들은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백성들에게 붙잡혀 평생을 갇혀 살게 되었다고 한다.
백성들의 언로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원뜻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구난방>이란 말은 그 어원과는 달리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여기저기서 검증되지 않은 소리를 잡다하게 떠들어대는 모양이나 그 소란스러움 정도로.
바야흐로 오프라인에다 온라인이라는 언로가 하나 더 늘어난 정보의 과잉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말이 옳은지, 어떤 말이 거짓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사람이 여러 말을 사방 여기저기서 읊어대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위정자가 그 백성들의 여러 소리가 듣기 싫다고 해서, 그리고 내 생각과 다르고 귀에 거슬린다고 해서 무수히 많은 그 말 모두를 중구난방으로 매도해버리고 무시해 버려서는 안된다. 오히려 제대로 된 중구난방이 되도록 언로를 열어두고, 백성의 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이 불신의 시대를 사는 지혜로움이 아닐까 한다.
/ 김명석 서울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