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이 총알 될 수 있다
쌀알이 총알 될 수 있다
  • 김명석 기자
  • 승인 2010.10.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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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적 징후는 식량위기로부터 올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철학가인 노엄 촘스키가 한 말이다. 2008년에 전 세계는 식량파동을 경험했고 올해부터는 제2의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일반 물가가 오르는 현상)의 우려가 일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기후로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고 가격이 폭등하는 등 국제 곡물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주요 밀 생산국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은 이상 고온과 가뭄으로 올해 생산량이 전년 대비 30%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과거 이집트는 비옥한 나일강변에서 인류 최초로 농경을 이룩한 부유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최대 밀 수입국으로 전락해, 거센 식량위기의 폭풍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고통을 겪고 있다. 국민의 40%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이집트 국민들은 설상가상으로 다가오는 식량위기로 인해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야말로 ‘빵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1960년대 ‘녹색혁명’으로 아시아 농업강국의 위상을 떨치던 필리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너무 빨리 농업을 버리고 산업화를 택한 필리핀은 지금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태국, 베트남 등에서 쌀을 수입할 수 있었지만, 최근 식량위기로 인해 이들 국가가 곡물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필리핀은 급격한 식량위기에 빠졌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세계 5위 곡물수입국이며 곡물자급률 또한 28%에 불과하다. 그나마 99%의 자급률을 보이고 있는 쌀을 제외하면 식량자급률은 밀 0.2%,옥수수 0.8%,콩 11.3% 등 평균 4.6%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 빈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 식량자급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6위다. 반면에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100%가 넘는다고 한다. 농업대국이 바로 선진국이란 등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주식인 쌀이 지금은 남아도는 재고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만 자연재해로 인해 순식간에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 위기는 예고없이 닥친다. 최근 채소값 급등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식량의 문제에 얼마나 안이하게 대처해 왔는지에 대한 자성을 하게 되었다.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나 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인식도 안이했다. 농업은 돈이 안된다는 생각, 그리고 자동차 한 대 팔면 돈이 얼만데, 하는 농업 경시 풍조는 우리 국민들의 암묵적이고 일반적 정서였다.

그러나 이번 채소값 급등 사태는 언제든지 식량이 자원화되고 무기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치는 우리에게 주식과 같은 개념이다. 따라서 쌀을 비롯해 배추와 마늘, 양파 등 국민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농산물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일정 수준의 재배면적을 확보하는 식량자급률에 대한 법제화가 추진되어야 할 시점이다. 개발위주의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농지를 보전하려는 정책이 바로 식량무기화에 대비한 국가의 미래 전략이 되어야 한다. 자동차 백대를 판 돈으로 쌀 한가마니도 살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오지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중국 농업의 핵심 관계자는 “중국인이 시카고 곡물거래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세계 곡물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식량안보를 위해 18억무(1조1천880억㎡·3천600억평)의 농지를 절대 보호하고 식량을 자급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며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신흥 공업대국으로 연평균 경제성장율이 두자리수에 육박하고 있는 중국이 이럴진대, 과연 우리가 고수해온 농업에 대한 정책이 온당했는지를 따져봐야 할 때이다.

FTA와 무한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 우리 농업은 설 땅을 잃고 있다. 농촌은 텅텅 비었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연령대는 갈수록 높아진다. 4대강 사업, 그린벨트 해제, 산업단지 조성, 무분별한 택지개발 등 개발과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다시 재고해 봐야 한다. 그리고 식량자급률에 대한 법제화, 농업에 대한 투자, 일정한 수준의 농지보전이야말로 백년 이후를 준비하는 국가의 미래전략이 될 것이다.

/ 김명석 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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