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동해남부선
추억의 동해남부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0.0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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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역을 출발해 울산, 경주를 거쳐 포항에 이르는 동해 남부선 145.9ĸm 구간은 지난 1960~70년대 배고픈 시절을 살았던 지금의 50대 이상 장년층에게는 애환이 깃든 추억의 장소다. 특히 해운대역에서 송정역에 이르는 구간은 철로가 바다를 끼고 뻗어있어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절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또 경치도 경치려니와 덜컹거리는 비둘기호를 타고 가면서 사먹는 삶은 계란과 찐 옥수수, 사이다 맛이란 요즘 아이들이 즐겨먹는 피자나 튀김 통닭 맛에 비할 바 아니었다.

울산~경주 구간도 인간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긴 마찬가지다. 특히 입실, 모화, 죽동, 불국사, 동방 구간은 서민들의 삶이 얽혀 있던 곳이다. 시골 할머니들이 직접 기른 농작물을 도시나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보따리를 이고 오르내리던 구간이고 장터에서 마신 막걸리에 얼근히 취한 촌로들이 차창에 기대 꾸벅꾸벅 졸던 곳이다.

이 구간에는 60, 70년대 통학생들의 추억도 어려 있다. 당시 기차통학이 본격화되면서 동해 남부선과 대구선이 교착되는 경주역을 중심으로 소위 ‘울통, 포통, 대통’이란 세 그룹이 형성됐다. 경주~울산 간을 기차로 통학하던 학생들을 ‘울통’이라고 했고 대구방향 통학생들을 ‘대통’, 포항 쪽 학생들을 ‘포통’이라고 불렀다. 경주역 구내에서 각 방향으로 가는 통학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통학생들이 가끔 젊은 혈기를 발산하곤 해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통학생들은 ‘패쓰’라는 월별 통학 승차증을 가지고 다녔는데 일단 개찰구를 통과한 악동들이 교묘하게 다시 밖에 있는 친구들에게 승차증을 건네주는 술수를 부리기도 했다. 이 승차증이 만료되면 그 때부터 통학생들은 ‘도둑 차’를 탔다. 친구의 승차증을 건네받아 일단 개찰구를 통과한 다음 목적지 역에 도착하기 전에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방법으로 무임승차를 하곤 했다.

동해남부선은 전체 구간 중 경주~포항 부분이 1918년 10월31일 먼저 개통됐고 이어 1935년 12월 부산진에서 울산을 거쳐 경주에 이르는 구간이 완성돼 전장 145.9ĸm의 동남해안선이 하나로 연결됐다. 당시 부산에서 포항까지 하루 두 번씩 운행되던 증기기관차는 속도가 느려 경주~울산 구간에만 무려 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동해남부선에 얽혀 있는 이런 추억들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기능을 상실한 부산진역 대신 부전역이 시발점이 된 동해남부선 부산~울산 구간이 2015년까지 복선 전철화 되면 해운대~ 송정구간은 장산을 관통하는 터널로 이설돼 그 절경을 볼 수 없게 된다. 경주~울산 구간도 그 정다운 모습이 확 바뀐다. 2012년까지 동해남부선 울산~포항 구간이 복선전철화 되면 삶의 애환이 서린 일부 역사(驛舍)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화, 죽동, 불국사, 동방, 나원, 경주, 사방, 양동, 청령, 부조 등 10개역은 폐지되고 입실과 부조, 나원, 안강역은 이전될 예정이다. 결국 ‘울통’ ‘포통’ 구간이 대부분 없어지는 셈이다. 동해남부선의 복선전철화 사업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역사지구를 효과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현재의 철로를 이설해야 한다는 것이 철도공사 측의 설명이다.

올해 11월 경부고속전철 울산역사(驛舍) 개통을 앞두고 엊그제 울산에서 경주를 거쳐 대구를 잇는 78.6ĸm 구간에 고속열차 시승식이 있었다. 대구까지 걸린 시간은 20분이다. 올해 말 완전개통 되면 울산에서 부산과 경주까지 걸리는 시간은 각각 10분 내외다. 이제 동해남부선은 이동 수단이 아니라 연결수단으로 변모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더 이상의 문명이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차 도착시간이 조금 지연돼도 속으로만 투덜대던 승객들의 순수함과 출발시간이 지났음에도 머리에 짐을 인 아낙네가 열차에 완전히 오를 때까지 기다려 주던 차장의 천연덕스러움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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