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지우지 못한 바람이
한 짝을 잃지 않기 위해
단단히 끈을 조여 매던
괄호가 동종의 유전자임을
나는 알지 못했다
중환자실 문이
털썩 내려앉은 순간
낡은 구두 한 짝만이 홀로 쓰러져 있다
한 때는
함부로 선택 당하기를 거부했던,
굳어 가는 내 몸 속에
젖은 신장을 떼어 넣어 준 사람
그 빳빳한 기억이
뼈대만 남은 굽에 찍혀
선 생리통을 앓고 있다
한 번쯤은
빈약한 변명들로 쌓아 놓은
숨 깊은 성(城)안에서
아내 웃음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괄호 안, 무엇 하나
나는
변명뿐이었다
[시작노트]
아내가 쓰러지고 난 후 중환자실 문 앞에는
낡은 구두 한 짝만이 홀로 남아 나를 응시하고 있다.
바쁜 일을 핑계로
나는 아내의 흉터 한 번 제대로 어루만져 준 적 이 없다.
아내는 그런 나를 가족이라는 괄호 안에 넣고
괄호 한 짝을 잃지 않기 위해
꼭꼭 끈을 동여 매었다.
그 안에서 나는 늘 빈약한 변명만 늘어 놓았다.
회사가 어떠하다느니, 친구가 어떠하다느니……
모든 것이 내 꿈과 나만을 위한 변명뿐이었다.
한 때는 참으로 도도했던 여자.
조그만 환심이라도 사기 위해 밤늦도록 기다리던 기억이
쓴 웃음을 자아낸다.
복부를 가로지른 수술자국에서 바람소리가 난다.
내 복부 안에는
아내의 젖은 신장 한 쪽이 깊은 숨을 쉬고 있다.
아내가 비워 놓은 자리는 너무나 컸다.
애들 학원비며 아파트관리비며 심지어 노모 생활비 송금계좌까지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기다려 줄줄 알았다.
한 번쯤은 떳떳한 남편으로서
아내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남들 다 한다는, 그토록 원하던 외국여행 한 번
손 꼭 잡고 해볼 줄 알았다.
아랫배를 파고드는 선 생리통이
밤새 파도를 타고 있다.
울지도 못하는 비라도
흠뻑 내렸으면 좋겠다.
/ 이용일 두레문학 회장
[이용일 프로필]
경기 이천 출생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등단
두레문학 회장/동인
함시 동인. 시평회원
공저<두레문학>. <시평>외
블로그 http://blog.naver.com/yilee_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