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점(痛點)
통점(痛點)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0.0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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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 마리 삶는 날이 잔칫집처럼 풍성했던 시절

소는 그 덩치만큼이나 든든한 아버지 보물 1호였다

여섯 자식보다 더 챙기는 또 하나의 가족으로

아버지를 지탱시켜 주는 흐뭇한 힘이었다

다락논 모내기 끝나는 날

아껴둔 늙은 호박과 콩알 한 바가지도 듬뿍 넣고

정성껏 쑨 여물 구유 가득 부어주었다

마지막 성찬이라는 것을 마저 알아챈 것일까

젖은 두 눈 서로 마주쳤다

동구 밖까지 소를 몰고 가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늘 다니던 길인데 낯선 양 자꾸 뒤돌아보는 소

느린 걸음 몇 번 옮기고 긴 울음 뱉어내곤 하였다

그 밤, 썰렁하게 빈 소마굿간

두엄 냄새보다 짙은 소주 냄새가 났다

내내 말이 없던 아버지의 한숨

흙벽에 남은 소잔등 털붙이 쓰다듬고 용서빈다

“니가 싫어서가 아니여.”

“울 엄니 죽기 전 세상 다시 보여주고 싶어서여.”

막내아들 6.25로 잃고 피눈물 쏟다가

끝내 빛마저 잃은 20년 한 맺혀 서럽기만 하다

니릅을 막 넘긴 일소의 그림자

보물 1호가 눈 껌벅이며 아버지 눈물 닦는다

낮은 지붕 눈먼 노모 방 실낱같은 불빛 밤새 흐느낀다

[창작노트]

할머니 기일이면 의례처럼 빠지지 않고 남편에게서 듣는 이야기다. 나는 뵌 적 없는 할머니와 아버님의 이야기이다.

1960년도 말 첩첩산중 산골은 무엇 하나 풍족한 것이 없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부족한 것은 물론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것 초차 어려운 시절이었다.

언덕배기의 자갈밭에 심은 고구마나 감자는 구황작물로써 크게 도움을 주었고 천수답이지만 다락논이라도 있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이 시절 소는 가축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기도 하였고 논밭을 일구는 큰 일꾼이었으며 그 덩치만큼 든든한 집안의 버팀목이었다.

그런 소를 가진 아버지는 버려진 땅을 개간하여 밭도 만들고 논도 만들어 눈 먼 노모와 여섯의 자식을 부양하는 힘이 되었으니 당연히 아버지의 재산 목록 1호였다.

어느 날, 그 소를 판다는 이야기에 가족들은 저어기 놀랐고 그 이유가 한국전쟁으로 막내아들을 잃고 몇 달을 울다 눈이 멀어 20여년을 넘게 앞을 못 보고 사는 할머니의 개안 수술을 위한 것이라는 말에 누구하나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며칠 후 있을 모내기를 앞두고 소는 아버지의 단짝 일꾼으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물 철벅이며 논바닥을 골랐다.

아버지가 잠시 허리라도 펼 짬에는 소도 그늘에서 뻣뻣했던 다리를 쉴 수 있었다. 그 시간 아버지는 부드러운 풀을 한 아름 베어 소 앞에 내밀어 놓고 잔등을 쓸어 내렸다. 그럴 때면 소는 아버지의 한탄과 중얼거림을 말없이 다 들어 주고 눈을 끔벅이며 아버지 편이 되어 주었다.

그런 소를 팔아야 한다. 아버지의 말벗이었으며 재산 목록 1호였던 소는 모내기를 다 끝내고 저도 정들었을 가족과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소를 팔고 온 그 날 밤, 아버지는 말없이 빈 외양간에서 나오실 줄 몰랐고 유일하게 소 팔기를 거부하던 할머니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밤 외양간을 떠난 소, 할머니, 아버지. 그들은 모두 같은 통점으로 아픈 밤이었으리라.

그 후 할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하고 다시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며 천수를 다하셨다.

다시 돌아오는 할머니의 기일을 맞으며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소 이야기를 또 듣고 있겠다.

/ 김민성 두레문학 회원

[김민성 프로필]

경남 양산 출생. 「시와비평&시조와비평」시조 등단.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삽량문학」, 「두레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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