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나무
철학하는 나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9.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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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아니라고

고개를 살랑살랑 가로 젓는 이파리들

그렇다고 그렇다고

고개를 아래 위로 끄덕이는 이파리들

한 뿌리 한 몸통

한 가지에 붙었어도

찬성 반대 찬성 반대

민주주의 하느라고 수선스런 이파리들

그러면서 뿌리는 아래로 깊어지고

가지는 위로 키 크고

나무도 그렇게 철 드는 거다

철드는 거다.

[작품 노트]

시는 읽는 사람의 몫임으로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시줄 외 무슨 말인가 보태면 사족(蛇足)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선 한 마디 할 수 있다. 어떤 사물을 만나 느끼게 되고, 사유하게 되고, 추리하면서 한 편의 시가 아무는 과정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가 있기도 할 것이니까.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말은 하도 유명해서 누구나 다 알지만 나는 사람을 ‘생각하는 나무’로 말하고 싶었고 결국은 생각하는 나무가 ‘철학하는 나무’로 자연스레 전환되었을 뿐이다.

나무는 어디에고 많다. 산에만 가야 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나무를 얼마나 많이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바라본다는 것은 또 다른 관심과 사랑이다. 관심안에 들어온 것은 곧 나의 세계가 되기 마련이다.

어느 날 나무가 내 관심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지나가는데 키 큰 나무가 이파리들을 있는대로 팔랑거리면서 마치 내게 손짓하는 자태로 나를 불러 세웠다.

화답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보니 그 이파리들이 흔들리는 방향은 제멋대로였다.

가로로 세로로 마치 사람이 자기 뜻을 말 대신 표현할 때 머리를 젓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곧 찬성과 반대라는 개념이 잡혔다. 더불어 민주주의가 떠올랐다.

공산주의는 획일적으로 앞으로 밀고 나가면 되지만 민주주의는 자유가 많다보니 말이 많은 법이다.

특히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야당과 여당이 머리채 잡고 싸우듯이 서로 물고 늘어진다. 정말 꼴보기 싫다. 대안 없는 반대에는 신물이 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하였다.

내 나라 일인걸 어쩌겠는가.

그래서 찬성 반대 끝에 ‘뿌리는 아래로 깊어지고 가지는 위로 키 큰다’는 표현을 쓸 수 있었다.

‘철학하는 나무’가 탄생하게 된 동기이다.

확대해서 보면 인류 역사에 찬성 반대 없는 흐름은 없었다. 그렇게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도 찬성 반대 하면서 굴러갈 것이다. 독자에게 공감이 가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 이화국

[약력]

1990년 월간 <현대시> 등단. 시집 <모래는 바다가 좋다>외 6권. 장편소설 <꿈꾸는 수레> 발간.

경기예총문학상. 국민편지쓰기대회금상. 고양시문화상. 한국시협회원. 한국작가회의회원. 고양작가회부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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