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찔레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8.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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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하나 따다 씹어보네

목젖너머로 고향 산등성이 굽이쳐오네

창백한 꽃잎,

학교파할 때, 힘들 때

어귀 지킨 채 눈을 찔렀지

고향 떠난 지 서른 해

도시바닥을 기면서 꿈을 꾸었지

하늘에 맞닿는 꿈

박봉에 굳은살 진 발등,

노동은 정직하다지만

꽃섶마다 가시넝쿨이었지

누구의 그늘 한번 되어주지 못한 채

경상도 소갈머리 없는 말 가시로

찔러대기만 했지

이제 반백너머 여기까지 왔네

정직한 너의 대지 바라보네

쭉 뻗는 자식들로

등골 휘어지는 산기슭

파운데이션 찍어 바른 첫사랑 춘자

헤픈 웃음만 걸려있네

<시작노트>

그에게서 멀리 떠나 왔지만, 어쩌면 그에게 가까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가. 어쩌면 서로 자신의 길을 부단히 걸어온 것인지도 몰라. 올 봄,장미꽃 색을 바래질 쯤, 지나는 길섶마다 자꾸만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유난히 발목을 잡아당기고 눈길을 빼앗았다. 살며시 다가가 어루만져 주고 입술을 갖다 대면 지긋히 눈을 감으며

톡 쏘는 찔레꽃, 그도 힘겹게 버티며 날 기다려왔나 보다.

고향 밀양을 떠나 울산에 정착한지 어언 30년이 넘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왔거나 축지법을 쓴 탓인지 이마에 주름살도 늘었다. 내 유년의 찔레꽃, 보릿고개 이맘때 쯤, 여고생 교복 깃 순백의 향기로 다가왔었지. 사춘기 짝사랑했던 춘자의 새하얀 손등 같은 새순을 잘라 허기를 태우며 콩콩 찧어대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곤 했었지.

빳빳하고 쿨렁한 도시의 직장 생활은 갈수록 힘들고 상사의 눈치며, 아이의 학비와 아내의 등살에 내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변해 버렸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찔레꽃은 내게서 모습을 감추었나 보다.

도심의 산기슭에 핀 찔레꽃의 모습이 핼쑥하다. 예전의 그 또렷한 자태와 향기와는 사뭇 다르다. 내 시각과 후각 탓인가 아님, 같은 세월을 살아온 탓인지, 우린 많이 닮아 있었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이름을 불러주었지.

날 따라 다니며 삼국지 이야기를 졸라대던 그 꼬맹이들, 춘자는 잘 살고 있는지, 아니면 누구는 이미 찔레꽃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오늘 이 언덕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꽃 떨치기 전에, 살아 있을 때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져야 한다. 찔레는 영원하기에 언젠가 그의 곁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나를 보려, 그를 만나러 다시 길을 간다.

<이성웅 약력>

밀양 출생. LG화학근무.

「울산문학」신인상. 울산문인협회 회원.

/ 이성웅 두레문학 운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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