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기다리며
여백을 기다리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8.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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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이 몸 홀로 어디에 두고

눈 어찌 감을까 걱정이더니

국화꽃 반듯하게 누워 바라보는 산자락

예전 같지 않아 눈앞이 흐리다

지은 죄 크다는 말 새삼스럽게

얼음같이 차디찬 가슴위로 이슬지는데

여덟 묶음 꽁꽁 매듭지어 입관하고

마지막 길에 꽃배 태워 보낸다

남은 빈자리 하나 이름 짓는다

여백(餘白) 애써 담지 않아도

넉넉한 인연 다하지 못하고

욕심쟁이 또 채우려 길을 나선다

비워야 공명하는 아름다운 음률

하여금 느낄 수 있는 눈물마저 없으면

삭막한 만장 펄럭거리는데

북풍이 새로 불어 구슬픈 여로

떠나야 할 시각에 돌아설 줄 아는

남이야, 허전해 어찌 살래

목 놓아 울다 자유로운 여유

소박한 기다림 함께 묻어두고 온다

< 시작노트>

삶에 지쳐 허우적거릴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 빈손으로 왔다가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 것. 서로 인연이 못해 그런 것을 돌아 가시기전 희미한 옛 기억 더듬으며 가느다란 호흡으로 말로 다 못하는 마음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마저 거추장스러워 몇 번을 훔쳐내고 또...

마지막 손 미끄러지던 날 그렇게 차디찬 이마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며 기도 했다. 부디 저승에서 행복하라고 목 놓아 운다.

어려서부터 부모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다 커버린 뒤에야 마주 앉아 할 말도 많았을 텐데. 그 가슴 얼마나 탔음 물 한 모금 못 했을까

김소월의 진달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약산에 핀 진달래꽃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그렇게 국화꽃 배에 태워 하늘공원에 묻고 내려왔건만 영악스런 시간이 어느새 사람을 간사하게 만들어 버렸는지 그토록 애 뜻한 심정 어디로 갔기에 지금 죄인 된 마음 다시 한 번 조아려 본다.

힘들고 아플 때는 멀리 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듯 시골 농부가 소를 몰고 먼 언덕이나 산을 쳐다보지 않고 땅만 보고 쟁기질을 한다면 이랑은 삐뚤어진다. 우리도 너무 눈앞의 욕심에만 집착한다면 삶이 왜곡되고 힘이 든다.

무엇을 위해 채우기만 해야 하는가를... 자주 쓰는 연장은 날이 서 있지만 그렇지 않음 아무리 훌륭한 연장이라 해도 무디게 마련이라는 세상 이치를 깨달으며 한 줌의 재로 공기와 토양에 해가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후세들에게 인정받는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그리워진다.

평소 근엄하면서도 자상하신 모습,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고 검소한 부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실천가였지만, 정작 당신의 몸은 돌보지 못해 비운을 남겼고 사회에 공헌한 바가 크기에 이 몸 또한 큰 은혜 입고 있음을 언제나 감사하게 여기면서 사랑으로 실천하고자 발버둥 쳐봐도 메아리뿐.

돌아오는 토요일은 아이들 손잡고 평소 즐기시던 은은한 커피 향과 카네이션 한 다발 그리고 못 다한 얘기 풀어놓고 오리라 벌써부터 마음 가벼워진다.

/ 강명화 울산문협회원

<강명화 약력>

한국교원대학원 교육행정학석사. 「새시대문학」 등단. 울산광역시체육회 이사. 울산문협회원. 한국여성포럼 수석부회장. 울산광역시교육연수원 운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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