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인식에는 문제가 없는가?
우리의 역사인식에는 문제가 없는가?
  • 김명석 기자
  • 승인 2010.07.2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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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눈동자라는 인기드라마가 있었다. 김성종 작가의 대하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로 TV판 블록버스터로 평가받았다.

1991년 당시 나는 이 드라마를 서울로 유학 온 일본인 여자 친구와 즐겨봤다. 한국말이 서툴렀던 그 친구는 종군위안부로 끌려가서 일본군에게 참혹한 수모를 겪는 여옥(채시라 분)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믿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자신은 종군위안부 얘기를 들어본 적도 배운 적도 없다고 했다. 당시엔 위안부 할머니의 수요 집회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저건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당신만 모르고 있을 뿐이라며 그 친구를 몰아붙였다. 더 나아가 나는, 너희 민족은 원래 호전적인 민족이다, 고려시대 이후 남해안에 출몰했던 왜구만 보더라도 그렇고, 임진왜란은 또 어떠냐며 공격했다.

일본인 여자 친구에겐 임진왜란이란 용어가 생소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1592년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라고 설명해주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다 또박또박 조선출병(朝鮮出兵)이라고 썼다. 일본에선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하긴 임진왜란(壬辰倭亂)이란 글자 그대로 ‘임진년에 왜가 일으킨 난리’라는 뜻이니 일본에서 그런 용어를 사용할 리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의식중에 이 용어가 가장 객관적이라고도 믿고 있었던 건 왜일까.

임진왜란과 조선출병. 같은 사건을 두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엄청난 역사적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임진왜란이라는 용어는 전쟁의 참혹함 대신 보잘 것 없는 왜(倭)나라 민족이 일으킨 작은 소동쯤으로 그 의미를 은폐 축소시키고 있고, 조선출병은 자신들의 침략 사실을 감추고 조선으로 병사를 일으켜 나아간 그럴듯한 명분과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난리가 아니다. 16세기 후반 일본 열도의 통일을 이루고 그 여세를 몰아 대륙으로 진출하려던 해양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명나라와 명의 지원을 받은 조선이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대륙세력간 충돌한 대규모 국제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조선의 위정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쟁의 정황을 왜곡하고 단순한 난리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만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따라서 이제 임진왜란은 ‘조일전쟁’이나 ‘동아시아 삼국전쟁’이라 불려야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 모두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용어가 될 것이다.

최근 한일 학자들 사이에도 객관적인 역사바라보기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한일역사공동위원회가 2년9개월 동안 논의를 거쳐 4~6세기 일본 야마토정권이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폐기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물론 독도문제나 종군위안부, 일제강점기 근대화 등 여러 쟁점과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못했다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인접국끼리 객관적인 역사바라보기의 첫단추를 끼는 작업을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수십 년에 걸친 공동연구 끝에 역사교과서를 공유하는 단계까지 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 일본인 친구와 나는 그날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나는, 지난 시절 당신네들이 우리 민족을 괴롭힌 것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분개하는 것은 당신네 나라에서는 그런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사실, 특히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고 소리를 질러버린 것 같다.

일본인 친구는 내 말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변명을 이어갔지만 우리 사이는 한일 간의 역사적 인식에 대한 간극만큼이나 큰 괴리가 생겨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그날 이후론 관계마저 서먹서먹해져 버렸다.

2010년. 올해는 한일합방 100년을 맞는 해이다. 1910년 8월에 벌어진 불행한 이 사건을 두고 일본은 반도진출(半島進出)로 명명하고 우리는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한일강제병합이라고 부른다. 일본 쪽 용어는 그렇다 치고 과연 경술국치나 한일강제병합이란 용어가 500년 이후에도 한일 두나라 모두에게 수긍할 수 있는 역사적 용어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일본의 역사왜곡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일 두나라의 불행한 사건 100년을 맞는 이 시점에 곱씹어 본다.

마치 500년 전 한반도에 임진왜란은 없었고 다만 피비린내 나는 동아시아 삼국전쟁만 존재했듯이 말이다.

/ 김명석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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