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삶의 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3.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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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그만 기업을 경영하는 50대 중반의 사장님이다. 약 40 여 년 전에 진짜 사장이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콩나물시루 속 같은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출근할 때, 그는 검정색 자가용의 뒷좌석에 앉아 조간신문을 보던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 집 벽돌 담장의 기초공사를 다시 하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으로 장맛비에 약간 기울어져 있는 담장의 기초를 바로 잡아 더 기울어지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당 한쪽 구석에 녹음기를 틀어놓고 클래식을 듣고 있었다. 이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사는 젊은 주부가 그 집 앞을 지나다 담장 고치는 모습을 보고, “아저씨, 우리 집 담장도 손 봐 주실래요? …그런데 아저씨도 저런 클래식을 감상하세요?” “아, 예. 대중가요도 좋아합니다. 가사를 천천히 새기며 들어보면 어떤 것은 꼭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을 가사로 써놓은 것 같아서 닭살이 오르기도 합니다.” “어머, 아저씨. 멋쟁이시네. 담장 고치는 일을 하시면서도 음악을 감상하시고…” “아주머니, 힘들 때일수록 쉬어 가는 것입니다. 담장을 빨리빨리 해치우려고 하면 내년에 다시 고쳐야 할 일이 생깁니다. 천천히, 쉬면서, 생각을 해가면서, 대중가요도 감상하며 담장을 바로 잡아야 한 50년을 버팁니다.” “아저씨, 언제부터 담장 쌓는 일을 하셨어요? 너무너무 교양이 높으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 집 담장은 다음 주말에 손보아 드리죠.”

이 사장은 삶의 질을 스스로 높이고 있는 것이다. 주말에 담장도 고치고, 대중가요도 감상하며, 젊은 아주머니가 미안해 할까봐 신분도 밝히지 않는 삶의 여유가 돋보인다. 그렇다고 이웃 집 아주머니를 무식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아주머니, 다른 일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삶의 여유를 맛 볼 수 도 있다.

삶의 질과 삶의 여유는 같이 다닌다. 삶의 여유는 그냥 할일이 없어서 빈둥대는,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마치 일과 여가(餘暇)의 관계에서처럼 삶의 여유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일에 중독되는 심리검사가 있다. 이 검사에서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수행하면서도 왠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가려낸다. 이런 사람은 여가라는 말만 들어도 큰 일 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세계 2차 대전 중에도 미국의 대통령은 휴가를 보냈다. 아마 처칠도 보냈을 것이다. 망중한(忙中閑)이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 당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삶의 여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세계 여러 분야의 지도자 중에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일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행여나 이 대통령이 이런 강박관념에서 하루 네 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는다면, 주치의의 충고도 있었을 테니 최소한 7시간으로 고쳐야 한다. 국민을 섬기는 마음에서 가장 부드러운 민주적 지도자가 되는 길이다.

삶의 질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의 여유 속에서, ‘토요일 밤에(김세환), 밤에 떠난 여인(하남석), 진정 난 몰랐네(임희숙)’를 읊조릴 수 있으면 한결 개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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