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정직이지 숨김이 아니다
교육은 정직이지 숨김이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3.1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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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능력껏, 열심히 가르치시오. 그러고 나서 그 결과를 이웃 반, 이웃 학교, 이웃 나라, 먼 나라와 비교하여 알아보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거나 반성해보시오. 교육은 스스로 정직한 선생님에게 하늘이 돕게 되어 있는 인류만의 제도입니다. 짐승들은 새끼에게 훈련은 시킬지언정 교육은 시키지 못 합니다. 정직하지 못 한 위선자(僞善者)로서 특정 종교의 맹신도(盲信徒), 또는 특정 단체의 추종자(追從者)들은 학습할 기회의 평등은 모르는 체 하고 결과의 평등만을 주장합니다.”-정년퇴임한 어느 모범 교사의 주장.

“서울 같은 특별시에서도, 울산 같은 광역시에서도 학생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따라, 즉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즉, 지위가 낮은 가정의 자녀들은 학습할 조건이 달라, 같은 학습력(學習力)을 갖추고 있어도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억울함이 있습니다.

부모를 잘 만난 부자 동네 아이들은 출발부터 다릅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특별과외, 대도시의 끝내 주는 실력파로부터 비싼 수업료 물어가며 철저하게 학습하여 기초실력을 잘 갖추고 중학교부터 대학 진학률이 좋다고 소문난 고등학교 인근에 위장 전입합니다.

그리고 통학거리 우선순위의 배정에 맞추어 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소문난 대학에 진학할 확률을 높입니다. 이런 환경의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부모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밥 늦도록 붙잡아두고 공부시키는 것을 싫어합니다. 학교에서 빨리 나와야 충분한 자금력으로,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시험선수(試驗選手) 훈련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시험선수 훈련에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의 개념이 필요 없습니다. 이런 교육환경의 불평등 속에서 학교 간의 학업성취도 결과 비교는 선의의 공평한 잘 가르치기 경쟁이 아니라 불공평한 현실의 한탄만 크게 할 뿐입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단순 비교로 교사와 학생들만 몰인정하게 경쟁 시킬 것입니까?”-불우한 환경을 실력으로 헤치고 나와 교육이상(敎育理想)을 좇는 열혈 교사의 변(辯).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교육과정(敎育過程)의 문제를 교육이 이루어지는 사회체제에서 파학해보면 교육이상에 서 있는 후자의 주장은 좀 지나치다는 편향적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에서 가르치는 행동의 출발을 분석할 때는 원인을 제공하는 원인개념들로 채워져 있다. 학습자의 지능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습자의 정서적 안정성이, 학습자의 학습역사(歷史)가 원인이 되어 쉬운 말로 ‘공부를 잘 한다, 못 한다.’는 것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고서 학습결과를 논할 때는 결과적 개념인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라고 뭉개어버린다. 여기서 뭉개어진 것을 다시 돌려놓겠다고 따지고 드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敎育課程)구성을 구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11일 실시한 초등학교 진단평가는 문항 형식을 떠나 국가적 차원의 교육과정(敎育課程)운영의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수집의 일환이다. 이것을 모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면 교직의 전문성(專門性)을 스스로 떨어트리는 것이다. 어느 사회체제이건 간에 스스로 평가를 하고 이에 터해 다음 계획을 수립한다. 이념, 이상은 도달 가능성이 없는 방향제시에 불과하고 현실의 계획은 목표도달 가능성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결과 평가는 과학적 계획 수립에 필수적이다. 과학방법은 정직하게 보여주어야 시행되지 숨기고 있으면 요행만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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