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는 귀신도 모른다
‘거시기’는 귀신도 모른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1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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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느 지역에 가면 ‘거시기’라는 낱말을 많이 쓰고 자기들끼리는 기막히게 잘 쓰고 있다. 울산 말로는 ‘거석’이다. 이 낱말은 대명사로서 ‘그것’에 해당된다.

이 거시기를 얼마나 편리하게, 잘 사용하는지는 그 지역 출신 모 탤런트가 TV(티브이가 아니라 티비로 발음해야 함)방송에서 소개한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

아버지가 마당에서 콩 타작을 하는데 오래된 도리깨라서 그만 부러졌다. 아버지가 방에서 놀고 있는 두 아들을 향해, ‘거시가, 거시기 집에 가서 거시기 좀 빌려와라.’ 이 말을 들은 큰 아들 녀석이 ‘예-’하고 늘어진 대답을 하고서, 아무 말 없이 이웃집 OO집에 가서, 닫혀 있는 안방을 향해 ‘거시기 아부지, 우리 아부지가 거시기 하는데 거시기 좀 빌려 달래요.’ ‘응. 헛간에 걸려 있으니까 조심해서 가져가라.’

여기서 거시기를 순서대로 맞추면, 큰 아들이 아버지 심부름은 자기가 해야 하니까 당연히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나왔고, OO집에 자주 가서 여러 가지를 빌려다 썼으니까 OO집에 가야하고, 아버지가 콩 타작을 하고 있었으니까 도리깨를 빌려와야 하는 것은 뻔한 일이다.

다음 거시기 아부지에서 거시기는 동네에서 통용되는 OO이름이니까 굳이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고, 아버지가 콩 타작하고 있는 사실을 이웃집에서 듣고 있었을 터이니까 빌려달라는 거야 당연히 도리깨라는 것임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 지역 영어 선생님이 영문 해석을 학생들에게 해주면서 막히는 부분은 대충 ‘거시기’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미국의 대통령 부시가 북한 김정일을 악의 거시기라고 했었는데…’라고 번역할 수 있다(갑자기 axis of evil에서 axis의 해석이 떠오르지 않아). 학생들은 김정일의 거시기를 말하는지, 축을 말하는지 불분명해도 질문하지 않고 대충 넘어간다. 이때 ‘거시기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간 그 친구는 반에서 왕따 당한다.

거시기 지역의 거시기 아버지가 안방에서 여자 손님들을 맞고 있는데, 막내아들이 속옷 팬티를 입지 않은 채 아랫도리를 다 내놓고 왔다 갔다 한다. 아직 어린 아들이지만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 때 절묘한 거시기가 사용된다. ‘어이! 거시기가 거시기 나왔어. 거시기해보드라고.’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엌에서 차 준비하던 거시기 어머니가가 금방 알아듣고 방에 들어와 아들을 덥석 안고 나간다.

그러나 다음 말에서 그 지역 사람들도 오늘 현재로서는 다음의 ‘거시기’ 뜻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귀신도 모른다. ‘거시기헐 사람은 거시기지?’ ‘야, 그 거시기는 귀신도 모른다.’ 19일이 지나고, 아마 20일 새벽이 되어야 알 것이다.

참, ‘거시기’는 한글 사전에 ‘너와 내가 다 아는 그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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