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반고등어
자반고등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7.0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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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아 놓을 수 없는 줄이 있다

그녀의 속살 열리면

말랑말랑 그리움

얼었던 냉동껍질도 철퍼덕 녹아

고드름 되어 처연하게 울부짖는 소리

냉장고 문짝이 삐걱 거린다

비틀어진 손아귀 살살 애무하면

썰물처럼 시원하게 속을 다 내놓고

너는 푸른 바다로 빠지고 싶은 회귀를 꿈꾸는가

꽁꽁 동여맨 육신이거든

흠씬 두드려 맞기나 하더라도

으깨어진 몸으로 어긋난 말씨로

또 다른 생을 바라보며 춤을 춘다.

밀물되어 돌아갈 곳이 없는데

섞이지 않은 회상은 투명하다.

하늘의 밑바닥은 바다

비릿한 냄새가 흥건히 베어나면

황홀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다만 움직일 수 없다

뜨거워진 후라이펜에 철퍼덕 돌아앉은 자태

온몸에 오른 여드름 방울

지글지글 터트려보는 상차림이다

가끔 밀어붙이는 색소폰소리

토막 난 몸, 마지막 몸부림에 잔뼈가 굵다

뼈 속까지 녹아내린 질긴 정

단꿈을 꾸고 난 후유증이다

좁은 길 따라 곱씹혀 낙루(落淚)할 수 없는

젓가락 끝에서 외줄을 탄다

속살에 수포로 피어나는 안개꽃

순백의 사랑 마주보는 가슴으로 여로 다독거리며

간밤에 달빛 달콤한 꿈

노랗게 잘 익었다

[창작노트]

휘휘 저으며 지나가는 바닷바람의 발목으로 갯벌의 비릿한 냄새가 종종 걸음 붙잡는다. 바닷가에서 맞이하는 향기는 그윽하지만 시장바닥에 붙잡혀 온 생선의 반짝이는 눈빛은 왠지 역겨움마저 들 때가 안타깝다.

부러 찾지 않던 어물전에서 발이 멈추는 이유는 추억을 곱씹어보고 싶음이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반찬으로 해줄만한 것이 마땅한 것이 없을 땐 늘 자반고등어나, 생 고등어를 사서 튀겨주고 지져주면, 입이 짧고 까다로운 남편까지도 고등어 요리를 좋아했다. 그러나 내겐 좋지 않은 추억이 있어 고등어는 쉽사리 입에 대지 않았다. 고2때 그날따라 엄마가 해주신 고등어자반 튀김이 너무 맛있어서 아침을 듬뿍 먹고 등교를 했다. 조회시간에 갑자기 머리가 띵~ 지탱하지 못하고 운동장에 쓰러졌던 기억. 고등어가 내게 맞지 않아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지금도 고등어처럼 등푸른 생선을 보면 눈과 입이 거부를 하기 일쑤다. 보는 것으로 인한 단절은 끝내 입맛과 소화 기능까지도 거두어간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한 가지 찬으로도 거뜬하게 한 끼 식사를 마칠 수 있게 했던 고등어, 한동안 그를 잊고 지냈다. 내가 먹지 않으니 상에 잘 올리지 않았었고 남편도 아이들도 어느 순간 고등어 요리를 잊고 살았었다.

시장 물가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을 무렵, 여기저기 눈요기를 하고 있을 때 고등어자반을 세일한다는 소리가 뇌리에 전달되고 갈팡질팡 재고 있던 나의 눈은 어김없이 어물전에 못을 박는다.

‘입맛도 없는데 고등어자반 튀김을 해서 줘 볼까?’ (남편이 집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을 싫어한다. 바닷가의 비릿한 냄새는 언제나 환영하며 찾아다니면서...) 큰 맘 먹고 살짝 바구니에 잡아넣는다.

동그란 눈이 빛을 발하여 빙긋 웃는 것 같다. 누구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생을 마감한 고등어도 알고 있었나보다. 단짝을 떼어내고 커다란 아가미가 달린 머리를 순간적으로 제거하니 퀭한 몸 두 쪽이 덩그러니 남는다. 살이 통통하니 쪄 있는 것을 보아하니 넓고 그윽한 바다 사랑을 거머쥐고 나온 녀석임이 분명하다.

모든 생물은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곱게 씻기고 따끈하게 데워진 프라이팬에 통통한 녀석을 덥석 올리고 냅킨으로 옷을 입혀놓으니 그 안에서 사랑을 꿈꾼다. 달콤하고 고소한 육질의 맛을 보여주기 위한 보시(普施)의 꿈을... 소찬으로 준비한 상이 꿈을 꾼 고등어 사랑으로 인하여 푸짐해졌다.

비릿한 맛을 싫어하던 남편과 아이들도 냉큼냉큼 도톰한 살집들을 떼어 입에 넣는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니글거리던 속내도 사랑의 손놀림을 보면서 사뭇 흐뭇해진다.

잊고 지냈던 맛을 되찾고, 잊었던 사람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 어물전에서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시장에 가면 약방의 감초처럼 어물전에 머물다 간다. 약방의 감초는 어려운 시절 몸을 보하는 목적으로 썼다 한다.

지금은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은 약재중의 하나다. 필요할 때에만 꼭 들어가는 감초처럼 아이들과 중년이 넘어선 나이엔 육류보다 생선으로 단백질 보충이 필요하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삼주 두레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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