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해안길 바다위 달리는듯
탁 트인 해안길 바다위 달리는듯
  • 김기열 기자
  • 승인 2010.07.0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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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강동 해안길

 

울산 동구를 거쳐 정자에서 끝나는 지방도 1027호선은 천혜의 아름다운 해안 경관과 탁 트인 넓은 시야를 자랑하는 해변도로다.

특히 어물포구에서 정자까지의 북구지역 7km 구간은 북구의 해안자연경관을 한눈에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최상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이자, 인근에 산재한 크고 작은 어촌 주민들의 유일한 소통로이다.

동구 주전해안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어물포구는 울산 12경 가운데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강동의 명물 몽돌밭이 시작되는 지역이다.

동구와 북구의 경계인 작은 다리를 건너면 ‘구암마을’이라고 적힌 표지석 뒤로 그림같이 예쁜 펜션과 횟집들이 늘어서 있다. 구암이란 이름은 표면이 거북등처럼 갈라진 차돌이 많아서란 설과 마을 뒤에 거북 모양을 한 바위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해송 사이로 보는 동해의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달리다 보면 수령이 460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우뚝 솟은 당사포구가 이어진다.

당사마을은 옛날부터 어획량도 풍부하고 미역도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마침 강동의 명물인 멸치가 많이 잡혀 포구 곳곳에서 따사로운 초여름 햇빛에 멸치 말리기가 한창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터키 선수들의 연습장소로 유명한 강동구장 입구를 지나 마을 위쪽으로 돌아가면 70년대 당시 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추억의 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당사포구를 지나면서부터 해안도로 오른쪽 아래로 아름다운 강동해안이 길게 펼쳐져 있어 마치 바다 위를 달리고 있는 착각이 든다.

잠시 동해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해 달리다보면 도로 바로 아래로 항아리처럼 생긴 우가포구와 정박중인 작은 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포구 밖에는 해녀들이 전복과 미역을 따기 위해 한창 물질을 하고 있었다.

다시 길을 재촉하니 도로 아래로 아담한 바닷가 마을 제전마을이 펼쳐져 있다. 보기에는 작은 포구지만 강동 최대 미역산지로 유명하다. 지금은 자연산 미역철이 끝나 포구 전체가 조용하다.

마을 위쪽에 있는 해수온천과 강동의 특산품인 젓갈공장을 지나 1027지방도가 끝나는 정자삼거리에 다다르면 정자천을 기준으로 판지마을과 정자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해안 일대에 반석이 판자처럼 깔려 있다는 것에서 유래한 판지마을에는 다양한 조개류와 장어구이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구이단지가, 정자항에는 신선한 활어와 대게 판매장이 각각 들어서 행인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 김기열 기자

▲ 제전마을 어촌계장 김명찬씨

“생선·해산물 잔뜩 이고

장에 팔러다닌 활기찬 길”

제전마을 어촌계장 김명찬 씨

“30~40년 전에는 생선과 해산물을 잔뜩 머리에 이거나 지게에 매고 비포장 길을 걸어서 정자와 멀리는 울산 읍내까지 팔러 다녔지”

북구 강동해안에서도 가장 중심에 위치한 제전마을 어촌계장 김명찬(56)씨 기억속의 강동해안길은 동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는 전혀 상관없는 힘든 길이었다.

김 씨는 “옛날에는 복어와 멸치, 붕장어 등이 많이 잡혔는데 이른 새벽에 출발하지 않으면 가지고간 물건을 다 팔지 못하거나 상해서 못쓰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말끔히 포장돼 드라이브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강동해안길도 당시는 비포장에다 버스도 하루 2번만 운행할 정도로 험한 길이었다.

김 씨는 “새벽에 물건을 팔러 정자장으로 가다보면 이웃 당사, 우가, 판지마을에서 물건을 들고 나오는 주민들과 길에서 만나 정답게 인사하며 같이 다니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씨의 말처럼 강동해안로는 주변 어촌마을의 생계를 이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생명의 길인 동시에 유일한 소통의 길이었다.

그러나 강동지역에 비가 많이 올 경우 주민들의 생명줄과 같은 강동해안로가 마비되기도 했다.

김 씨는 “정자로 가기 위해서는 정자천을 건너야 했는데 튼튼한 다리가 없어 비가 많이 올 경우 물이 넘쳐 장보러 가는 것은 물론 학교조차 갈 수 없었다”며 “심지어 선생님도 비가 많이 내리면 학교에 오지 말고 집에서 꼼짝 말고 숙제하라고 당부할 정도였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지막으로 김 씨에게서 1960년대 초가집과 나룻배 등 제전포구 모습이 생생히 담긴 귀중한 사진을 보는 행운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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