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肖像)
젊은 날의 초상(肖像)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6.30 2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출근과 동시에 PC의 전원을 켠 다음, 진행부로부터 온 이메일을 확인한다. 지난주엔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의 장편 <율리시스>를 만났었다. 그 작품은 대체적으로 난해한 표현이 많아 교정작업에 무척 애를 먹었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좀 느슨한 작품이 올라오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주 검토하실 작품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개정본)>입니다. 공유파일 OO번입니다. 진행부 OOO 팀장’

나의 주된 임무는, 번역·교정을 마친 내용물을 인쇄로 넘기기 전에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일이다. 따라서 일단 업무가 시작되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살얼음판을 걷는다. 단어가 스칠 때마다 번역의 오류는 없는지 문맥은 원활한지 순화되지 않은 딱딱한 표현은 없는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아마 내가 고1 때 읽은 것으로 기억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터라 문학을 향한 갈증을 시원스럽게 해소할 곳은 오로지 학교 도서관이었다. 나의 모교인 학성고 도서관은 미래에 문인이 되겠다는 푸른 꿈을 가꾸어 나가던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샘터였다. 평생 책과 함께 살아가야 할 나의 미래는 아마 그곳에서 싹트고 있었던 모양이다.

홀로 걸으며 사색하기를 유난히 즐겼던 나는, 그 당시 울산에서 제일 번화했던 옥교동 거리를 거닐며, 초등학교 5학년 때 떠나온 서울 거리와 오버랩시켜 출판사 이미지가 풍기는 건물만 만나면 출판사로 선정(?)한 뒤 마음속으로 출판사명을 지어 주곤 했다. 그때만 해도 울산에는 소규모의 인쇄소만 몇 군데 있었을 뿐 전문 출판사는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나는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상상의 출판사를 세워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서울로 진출, 이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밝혀 줄 양서(良書) 출판에 젊음을 불태우고 싶은 욕망을 키워 가고 있었다.

1981년 가을 어느날,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복학한 나는, 우연히 캠퍼스 게시판에 나붙은 포스터 한 장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전국 대학생문예현상모집’

순간 뇌리를 빠르게 스쳐 가는 어떤 강렬한 빛을 느꼈다.

‘그래, 바로 저거야!’

나는 곧바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닿자마자 방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나는 그간 틈틈이 습작 중이던 작품을 정신 없이 써 내려갔다. 마치 무엇에 홀린 양, 펜을 꽉 거머쥔 나의 손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날이 저물고 저녁식사도 거른 나는 다음날 새벽 동이 틀 무렵, 기어코 ‘탈고(脫稿)’의 단맛에 푹 빠져들었다. 제목은 ‘각본 없는 하루’로 달았다. 그날 오전, 나는 초췌한 얼굴로 북정동 우체국으로 달려가 누런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원고를 보내고 나서 한 달쯤 초조한 나날이 흘렀다.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혹 잠이 가까스로 들면 당선의 단꿈과 탈락의 씁쓸한 꿈이 뒤엉켜 나를 옭아매곤 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전 강의가 끝나 학생식당으로 향하는데,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 보니 과대표였다. 급히 달려왔는지 그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전보 왔어!”

과대표가 노란 전보용지를 꺼내 무심코 나에게 건넸다.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전보용지를 펼친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축하드립니다. 단편소설 부문 대상 당선. 시상일정 추후 알림.’

그해 늦가을, 나는 대상 수상에 힙 입어 서울로 진출, 출판편집인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갈수록 젊은 층의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보도가 우리들을 종종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젊은 후배들이 결코 희망을 잃지 않길 나는 바란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 한 가지의 재능은 타고 난다고 하질 않는가. 성공의 여부는 그 재능을 누가 얼마나 꾸준히 갈고 닦느냐에 있다고 본다. 일단 목표를 세웠으면 ‘이미지 트레이닝’에 몰두하면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길 바란다.

‘두드려라, 그러면 반드시 열릴 것이다.’

/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부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