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테마파크의 실종
공룡 테마파크의 실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6.2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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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초등학생들을 앞에 놓고 문화해설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당시 저 아래 내려 다 보이는 우정동, 교동, 북정동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어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호수의 가장자리 쯤 됐을 거야. 시꺼먼 진흙이 질퍽하게 펼쳐져 있는 호수 주변에는 아열대성 초목들이 우거져 있고 말이야. 그런데 이 발자국으로 봐선 육식 공룡이 초식 공룡을 뒤 쫓아 가고 있었던 것 같아. 저 앞 족에 찍혀 있는 발자국 보다 촘촘하잖아. 발자국 간격이 이렇게 짧다는 것은 빨리 달려갔다는 증거지. 육식공룡이 왜 초식 공룡을 뒤 쫓았을까? 잡아먹으려고 그랬던 거지.

지금부터 약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전기(前期)에는 두 종류의 공룡이 살고 있었어요. 보다 온순한 초식 공룡과 사납고 덩치가 큰 육식 공룡이 있었어. 그런데 육식 공룡이 가끔 초식 공룡을 잡아먹기도 했지. 여기 80여개의 발자국이 있지? 앞에 가던 초식 공룡 여덟마리를 육식 공룡 한마리가 뒤 쫓아 갔다는 흔적이야. 그러니까 약 1만 년 전에는 우리가 서 있는 이 일대가 아마 공룡들이 모여 살던 ‘공룡 공원’이었을 거예요.

지난 2007년 5월 울산시가 승인한 중구 혁신도시 개발 계획대로라면 중구 유곡동 54-1번지에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들은 지금 쯤 ‘공룡테마 파크’의 기본 계획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3년 후에는 혁신도시 내 백악기 공원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이런 재미있는 ‘쥬라기 공원’얘기를 들려 줄 재료가 돼야 한다.

그러나 유곡동 무지골 흙 벼랑 위의 암석에는 아무리 세어 봐도 스무 개 남짓한 발자국 밖 에 남아 있지 않다. 공룡 화석이 있는 암반 뒤쪽을 시멘트로 포장하는 바람에 절반 이상이 그 속에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시멘트 도로가 없는 산 쪽 암반은 다시 공룡 발자국이 있는 바위와 같은 색깔을 띠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 밑으로 같은 암반이 뻗어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안내 표지판에는 80여개의 발자국이 있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암반위에 남은 것은 20여개에 불과하다. 혁신도시 건설 공사를 하면서 ‘공룡테마 파크’를 조성할 수 없을 만큼 훼손돼 버린 것이다.

전남 고성 상족암과 연화사 입구에 있는 공룡 발자국 화석은 유명 상품이 된지 오래다. 울산시가 본받아야 할 곳은 고성군 구학포 바닷가다. 이곳은 상족암과 달리 남은 공룡 발자국 흔적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고성군은 바다 절경과 몇 개 남지 않은 공룡발자국을 멋지게 연결해 전국적인 명소로 조성했다. 공룡 발자국이 있는 암반과 해안을 지탱하고 있는 바위 그리고 뒷산의 소나무를 연결해 절경을 꾸며 냈다. 자연 데크를 설치해 가파른 절벽을 타고 내려오면 곧장 공룡 발자국에 연결되도록 한 것도 눈에 띤다.

경남 창녕 도천리 화석단지를 보면 울산이 얼마나 많은 문화자산을 소홀히 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도천리 화석 단지를 보면 요란하지 않지만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 찾아 낼 수 있는 한 최대로 찾아내고 보존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최다의 공룡발자국을 보유한 지역이 됐다.

그러나 울산시 중구 유곡동 무지골은 이와 딴판이다. 자연사 유적을 보존하기는커녕 훼손하기에 여념이 없다. 다른 지자체는 애지중지하는 자연사 문화재가 그 곳에선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1만 년 전 중생대 유적이 철판 조각 몇 개로 겨우 몸을 가리고 있을 정도니 문화유산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이 보다 더 민망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것은 초라하게 서 있는 안내 표지판 내용이다. ‘이곳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지질시대 울산지역에 대한 자연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울산시 문화재 사료 12호는 무지몽매한 인간들에 의해 그 명운(命運)을 다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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