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자한 광기·집념이 빚은 ‘타지마할’ 아내사랑이 낳은 인도 문명의 최고봉
샤자한 광기·집념이 빚은 ‘타지마할’ 아내사랑이 낳은 인도 문명의 최고봉
  • 이상문 기자
  • 승인 2010.06.2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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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인도 무굴제국 흥망사 2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마할의 죽음으로 비통함에 빠져있던 샤자한은 어느 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아내를 추모하는 무덤을 거대하게 짓기로 결심했다. 우선 페르시아에서 우스타드 이샤라는 잘나가는 건축가를 불러 설계를 의뢰하고 그가 요구하는 대로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뛰어난 기술자들을 징발했다. 또 중국 운남성에서 질이 좋은 대리석을 운반하는데 수백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됐고 모자라는 석재는 러시아에서도 가져왔으며 2만 명이 넘는 인부가 동원됐다. 1631년에 첫 삽을 뜬 이 공사는 22년만인 1653년에 완공됐다. 22년 동안 샤자한은 자신의 궁전인 아그라성에 지은 팔각정 무삼만버즈에 올라 야무나 강을 배경으로 얼개를 갖추어가는 이 무덤을 바라보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공사의 총감독을 맡았던 신하가 달려와서 무삼만버즈의 대리석 층계 아래 부복했다. 그리고 드디어 공사가 끝났음을 아뢰었다. 왕은 하루라도 빨리 그 무덤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신하는 공사를 위해 설치한 가설물을 철거하는데 적어도 반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보고했다. 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가설물 철거에 협조하는 사람은 자신이 철거한 가설물을 다 가져가도 좋다는 특명을 내렸다. 일설에 의하면 얼기설기 가설물에 의해 가려졌던 무덤이 우윳빛 속살을 드러내는 데는 그 명이 떨어지고 나서 불과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지어진 왕비의 무덤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뭄타즈마할은 타지마할 지하 정중앙 석곽 속에 묻혔다.

샤자한은 이 같은 불세출의 걸작인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아울러 아크바르 대제가 축조한 아그라성을 본뜬 레드포트를 델리에 건설하며 델리 천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우윳빛 타지마할 건녀편에 이번에는 검정색 대리석으로 타지마할과 똑같은 모양의 무덤을 만들어 자신의 주검을 묻고, 거기에 구름다리를 놓아 두 사람의 영혼이 야무나강을 건너다니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광적인 욕심은 국고가 비어가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

아우랑제브는 샤자한의 막내아들이다. 그는 철저한 무슬림이었고, 계속적인 대역사를 계획하며 국가 재정을 바닥내고 있는 아버지의 실정을 구실삼아 형들을 무참히 제거한 후 샤자한마저 폐위시켰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의 지나친 사랑이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고, 나라마저 병들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타지마할 조망대인 무삼만버즈에 감금했다. 샤자한은 왕위에서 쫓겨난 후 죽을 때까지 8년 동안 야무나강을 배경으로 동그라니 떠있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유폐된 채 살았다. 그리고 그의 주검은 아내의 석곽 한 치 옆, 또 다른 석곽 속에 놓여졌다. 그러니까 타지마할 전체를 털어 유일한 비대칭 구도가 된 셈이다.

아우랑제브는 엄격하고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군사적 통제력이 뛰어나 제국의 영토를 넓히고 제국의 영화를 이어갔지만 지방 호족들의 반란과 직속 신하의 배신으로 제국의 황혼을 재촉한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타지마할이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호화분묘를 만든 것과는 달리 살아생전 자신의 무덤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필사한 코란을 판매한 수익금만으로 자신의 무덤을 만들 것을 엄명해 두었다. 그는 아우랑가바드의 엘로라 석굴로 가는 길목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최후를 맞았으며 생전의 유언대로 쿨다바르라는 마을의 자그마한 이슬람 사원 마당 한켠에 아무런 장식도 없이 묻혔다. 그리고 힌두국가 인도에서 꽃피웠던 거대한 이슬람 왕조인 무굴제국은 서서히 저물어 간다.

무굴제국은 굽타왕조, 아소카왕조와 함께 인도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왕조 중의 하나다. 역설적이게도 힌두국가에서 이슬람 왕조가 가장 크게 흥성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애초 힌두인들의 저항에 부닥쳤을 때 아크바르 황제는 그들을 과감하게 끌어안았다. 그의 왕비가 바로 힌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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