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출신 누르자한 인도문명에 영향 힌두문화와 이슬람의 조화 변종문화 탄생
페르시아 출신 누르자한 인도문명에 영향 힌두문화와 이슬람의 조화 변종문화 탄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6.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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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인도 부굴제국 흥망사1

미 르자 기야스 벡은 페르시아의 귀족이었다. 왕의 명을 어긴 죄로 불같은 미움을 사게 된 그는, 어느 날 가족들을 대동한 채 야반도주를 시도했다. 목적지는 인도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메흐루니샤라는 어린 딸이 있었다. 길고 험한 여정 속에 딸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라자스탄의 사막에 다다랐을 때 닥쳐온 기갈과 추위는 그에게 독한 맘을 품게 했다. 새벽녘, 잠이든 어린 딸에게 모래를 이불삼아 덮어 준 채 식솔을 다그쳐 길을 떠났다. 모래언덕 위로 집채만한 태양이 솟아오를 때 그는 가족들 몰래 아침노을보다도 더 붉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메흐루니샤의 생명은 질겼다. 아이는 미르자 기야스 벡의 뒤를 따르던 상인들에 의해 모래더미 속에서 발견됐다. 상인들은 자신이 섬기던 상전의 딸을 비단에 감싸서 아그라로 데려왔다. 이 장면은 미르자 기야스 벡 부녀의 인생은 물론 무굴제국의 흥망이 엇갈리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미르자 기야스 벡은 무굴제국의 아크바르 황제의 맘에 들어 새로운 영화를 누리게 되고, 그의 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답게 자라 페르시아 소속의 장군에게 출가를 한다. 하지만 사막의 굶주린 늑대에게 먹이가 될 뻔했다가 살아난 그녀의 인생이 그렇게 한갓지게 막을 내리지는 않았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서른의 과부가 된 기구한 팔자의 그녀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인도의 아그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아크바르 황제의 후궁 중 한 사람의 시녀가 되어 아그라성으로 들어간다.

여 기서 그녀는 극적인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바로 아크바르의 뒤를 이은 제항기르 황제의 넋을 빼앗고 만 것이다. 풍류남아였던 제항기르는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도 범상치 않은 과거를 지닌 페르시아 출신의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단숨에 제국의 왕비가 된 그녀는 누르자한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천성적으로 호방한 성격에다가 놀기를 좋아했던 제항기르는 카시미르 지역을 좋아해 재임 중에 스리나가르를 자주 방문했었는데, 스리나가르에 ‘살리마르 박’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누르자한에게 바칠 정도였으니까 제항기르의 인생에 있어 카시미르와 누르자한은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실제로 제항기르는 카시미르에 빠져 영리하고 아름다운 아내 누르자한에게 정치를 맡겨버렸다. 미르자 기야스 벡을 비롯한 페르시아 출신의 외척들이 득세하자 제국의 문화는 급속하게 페르시아풍으로 변모한다. 힌두문화에 비해 비교적 앞서있고 세련된 이슬람 문명은 누르자한에 의해 대폭 수용되고, 심지어는 궁중에서 페르시아어가 통용되기도 했다. 미술과 건축, 문학과 의상, 음악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대륙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생겨난 문화는 인도 역사상 가장 독특한 문화로 평가받는다.

누 르자한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야무나강 북쪽에 이슬람 양식의 무덤을 축조한다.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라는 이 무덤은 현재 ‘리틀 타지마할’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훗날 타지마할 축조의 교과서 역할을 하게 된다. 예컨대 완벽한 사각대칭의 건축 양식은 물론이며, 대리석 바탕에 밑그림을 그리고 선을 따라 구멍을 뚫어 각기 다른 색깔의 돌을 끼워 넣어 그림을 완성하는 일종의 상감기법인 ‘피에트라 두라’는 원래 페르시아의 장식기법인데 이 무덤을 축조할 때 인도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나중에 타지마할은 이를 본받아 짓게 된다.

무굴제국에 누르자한의 그림자는 계속 이어진다. 제항기르를 이은 샤자한 황제의 왕비인 뭄타즈 마할이 바로 누르자한의 조카였기 때문이다. 샤자한은 왕비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17년의 결혼생활 중 열네 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하니, 물론 자녀의 숫자가 금슬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사랑은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전장에도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샤자한이 왕비에게 쏟은 열정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왕비가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애통함을 참지 못한 샤자한은 하룻밤 사이 백발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 아그라성의 견고한 성벽.

▲ 아그라성 주변의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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