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청 우표 발행
북구청 우표 발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3.0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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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북구청이 구정 홍보를 위해서 북구의 심벌마크, 문화재 등을 담은 홍보용 우표를 발행해 지역 애향심 고취 및 이미지 제고를 꾀 할 것이라고 한다. 소위 ‘신개념 우표시대’를 지자체가 활용하는 사례로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볼 때 격세지감이다.

지난 50년대 말 우리나라 보통우표 한 장 값은 10환, 막걸리 한되는 20환이었다. 똑같은 우표가 요즘 2백50원인데 비해 막걸리는 1천 500원인 것을 보면 지난 시절 공공요금이 일반물가 보다 상대적으로 비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는 우표가 화폐기능 까지 지니고 있어 학동들의 저축장려용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민간인들 사이에선 간단한 물물교환의 대역을 맡기도 했었다.

우표 한 장값이 10환이던 시절, 우체국에 근무하던 인척 한 사람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어느 날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다가 소인이 찍히지 않은 우표를 발견하고 침을 살짝 발라 떼 낸뒤 막걸리와 바꿔 들고와 직원들과 나눠 마셨다고 한다. 나중에 이 일이 윗 사람에게 알려져 곤욕을 치르고 직장을 잃을 뻔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표가 간단한 화폐 역할을 했던 시절 추억담의 일부다.

우표가 서민의 삶과 어울어져 애환이 서려 있는 만 큼이나 한국124년 우정 역사 또한 평한치 만은 않았다.

1884년 고종의 칙령에 의해 설립된 우정총국이 한국 최초의 ‘문위’ 우표를 발행했다. 당시는 우표라 하지 않고 ‘무초’라 했는데 그때 화폐 단위가 ‘문’이였기 때문에 우표 수집가들이 나중에 붙인 이름이다.

당초 5종을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홍영식을 비롯한 개화파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는 바람에 2종(5문, 10문)만 발행해 서울, 인천간 오가는 우편물에 1884년 11월18일부터 20여일 간 사용되다 중단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문위우표는 17장 정도로 1장에 900만원을 호가 한다고 한다.

1895년 발행된 태극 무늬가 들어간 태극우표부터 ‘우표’라고 불렀다.

당시 기울져 가는 국운은 우표를 통해서도 보인다.

최초의 문위우표부터 태극우표까지 우리나라에 인쇄시설이 없어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서 찍어왔다. 갑신정변으로 우정사무가 중단되자 일본에서 찍어 온 우표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외국인에게 헐값에 불하했다.

태극우표 도안도 우리가 보낸 초안과 다르게 일본인들이 멋대로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 우표가 우리 손으로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 부터다. 해방후 발행된 우표의 랜드마크가 지난 2월10일 소실 된 숭례문이었다.

1947년7월1일 우표속에 처음 등장해 50만장이 인쇄됐고 57년 6월25일 발행된 보통 우표 100만장 속에도 숭례문이 들어있었다.

국내 우표가 다양화 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6월 10일 ‘환’화를 ‘원’화로 10대1 평가 절하한 ‘원화시대 우표’에서 태동돼 지난 88올림픽을 거쳐 90년데에 접어 들면서 부터다.

지금은 스티커식, 형광, 향기나는 우표 등 개인이나 단체의 취향, 주문에 맞춰 제작돼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는 수준에까지 와있다.

이번에 북구청이 시도하고 있는 우표도 이 부류에 속한다.

지난 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는 기념 우표 5백4만장이 발행됐다.

최초의 우표 문장은 국가원수의 초상, 숫자 등이 주를 이루었으나 2차 대전 후 선전매체로 이용되기 시작해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정책 등 국력을 나타내는 소재로 점차 바뀐 것이 기념 우표의 효시다.

북구청이 생각하고 있는 쇠부리 축제, 박상진 의사 생가 도안 등도 결국 지자체의 역사, 문화를 자랑하는 현대적 ‘우표 홍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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