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깊은 산중 속 하늘과 맞닿은 마을로 가는 길
구불구불 깊은 산중 속 하늘과 맞닿은 마을로 가는 길
  • 김준형 기자
  • 승인 2010.06.1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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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 보삼마을 가는길

 

보삼마을은 울산에서 가장 하늘에 맞닿은 마을이다. 산꼭대기에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다. 아직도 전통 억새초가가 남아있고 마을 뒤 산 너머에 생태계의 보고라고 하는 무제치늪이 있다.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와 양산시 상북면의 경계에 위치한 이 마을로 가는 길은 통도사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가다 조일마을에서 ‘보삼마을’, ‘무제치늪’이란 이정표가 있는 샛길에서 시작한다.

길로 들어서면 하천 계곡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는 좁은 포장도로가 나오고 길옆으로는 정족산(일명 솥발산) 자락 사이의 깊은 계곡인 상금수골이 보인다. 이 계곡은 무제치늪으로부터 흘러나온 때문인지 언제나 물이 마르지 않고 경관도 좋아 여름이면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계곡의 물길에는 길이 수m에 달하는 크고 넓은 화강암들이 자리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물은 혼탁하고 주변도 파헤쳐져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공사는 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어 옛 모습을 거의 잃은 상태다. 원래는 차한대 겨우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낡고 좁은 포장도로였다. 구불한 길은 아슬아슬하게 깊은 산중으로 이어진다.

차량을 이용해 20분 정도 가다보면 산정상 아래 10여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보인다. 보삼마을이다. 마을입구에 들어서면 동그란 비석이 눈에 띈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6)’가 촬영된 것을 기념한 것이다. 기념비 뒤에 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주택이 영화에서 옥녀가 대감 집에 씨받이로 가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촬영 당시는 억새로 지붕을 이은 초가였지만 관리가 어려운 탓에 집주인이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버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여 채의 억새초가가 남아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뽕’, ‘감자’, ‘앵두’ 등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현재 억새초가는 단 한채만이 남아 있다. 마을 뒤에는 울산에서 최고, 전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큰 감나무가 우뚝 서있다.

다시 길을 따라 정족산 쪽으로 올라가면 용암사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가다보면 갈랫길이 나오고 무제치늪까지 이어진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이 산길은 아직도 원시림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양옆으로 빼곡히 드리워진 초목들이 시원한 나무동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름모를 들꽃도 피어있다. 참나무 숲 사이로 바쁜 걸음을 하는 다람쥐를 보는 행운도 가질 수 있다. / 김준형 기자

보삼마을 토박이 박수호 씨

마을 여기저기서 물‘콸콸’

길만 나서면 바지가 흠뻑

“아랫도리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보삼마을에서 만난 토박이 박수호씨(55·사진)는 추억을 되짚었다. “매일같이 40분정도를 걸어 산 아래 학교에 다녔고 어른들은 보삼마을 특산물인 열무를 팔러 통도사를 넘어 신평장까지 갔다 오곤 했죠. 이 마을과 골짜기는 여기저기 워낙 물이 철철 흐르는 곳이라서 길만 나서면 흠뻑 젖어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게 산꼭대기에 마을이 생긴 비밀입니다. 물입니다. 물.”

박씨의 말처럼 실제로 이 고산 오지의 마을에는 여기저기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마을 아래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계곡 물이 힘차게 콸콸거린다. 마을 중앙에는 작은 마을우물이 있는데 아무리 퍼내도 수면이 줄지 않는다고 한다.

“이 높은 곳에서 논농사를 했다는 게 믿겨집니까?” 박씨는 마을 뒤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예전에는 마을 뒤에서부터 산 능선까지 논농사를 했습니다. 물이 땅에서 그냥 나오니깐 물 걱정을 안했죠. 지금 생각하면 산 뒤쪽이 무제치늪이라서 땅 아래에 물이 항상 흐르는 것 같습니다.” 무제치늪은 1996년 발견돼 2007년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로 해발 510~610m에 위치한다. 습지 밑바닥에 미세한 수로가 형성돼 항상 일정량의 수분과 물이 고여 있어 지리생태의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그는 동네 뒤로 난 길을 따라 무제치늪에도 종종 갔다고 했다. “예전에는 뭔지도 모르고 산나물이 많이 나니깐 종종 따러가기도 했죠. ”

그는 보삼마을이 옛 모습을 잃어가는 점을 걱정했다. “갈대 지붕의 초가가 이제 한 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영화들의 배경이 된 마을이라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보여줄 것이 없어 아쉽습니다. 지금이라도 몇 채 정도의 전통초가를 지어 옛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삼마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찾아온 주민들이 오랜 세월동안 정착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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