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동백꽃
아버지와 동백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6.02 0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른했던 봄에 뿌려지는 눈보라

병실에 가두어진 눈동자들은

하얀 꽃 궤적 쫓기에 바쁘다

이즈음이면 남도 섬 어딘가 지천일 동백꽃

그가 심은 동백나무는

주인 잃은 상심에 몽우리를 맺지 못했다

평생 자신을 그늘 속에 숨겼던 그

침대에 매달린 demantia라는 단어가

오늘 그늘 언저리에 노출된 그의 정체성

“할아버지! 나 알겠어?”

손녀 물음에 그는 동백꽃 한 송이를 피운다

“아버지 …” 차마 묶지 못한 내 부름에도

그는 빨간 동백꽃 한 송이 피우고는

이내 벽걸이 텔레비전 속으로 시선을 꽂아 넣는다

그가 간직한 기억의 방에 이제 나는 없는 것일까

불현듯 비워버린 그의 기억이

동백꽃으로 피어나는 요양원 병실

오 남매가 빼먹은 골수는 텅 비어

추가로 표시된 osteoporosis

그 공간으로 그의 정신과 기억들이 새어나간 것일까

녹녹치 않았던 일생 그나마 꽃으로 피어 다행이다

마주치는 눈동자마다 그의 동백꽃은 활짝 핀다

붉게 아주 붉게…, 그의 가슴에 든 피멍보다 붉게…

그의 가슴에 흐르는 차가운 냇물 한줄기

마주치는 눈동자마다 그가 피워내는 동백꽃은

그가 건너야 할 징검다리

동백꽃 붉게 피었다 사그라질 때마다 내 가슴에 금이 갔다

갈라진 그 틈으로 자꾸 눈물이 베인다

詩作노트

그는 참 지난한 삶을 살아왔다. 조부가 일본 탄광에서 돌아가시고 큰집에 맡겨졌다. 그의 양육비로 조부의 보상금 일부가 큰집에 전해졌으나 큰집에서는 그 돈으로 운수업을 크게 벌렸고 그는 머슴처럼 부려졌다. 매일 30리 산길로 나뭇짐을 날라야 했다. 그 한이 깊어서 재가에 실패하고 돌아온 어머니를 평생 용서하지 못했다. 조모가 돌아가시고 난 10년 후 기제사가 있었던 날, 그는 장에서 동백나무 한 그루를 사와서 심었다.

조모는 살아생전 동백기름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머리손질을 했다. 아버지와 조모 사이에서 눈치를 보아야 했던 모친은 장날이면 2홉들이 소주병에 담긴 동백기름을 내손에 들려 조모에게 보냈고 때때로 하룻밤 조모와 함께 자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아버지와 모친 사이에는 가벼운 언쟁이 오갔지만 크게 비화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버지의 가슴속에도 용서가 싹을 틔웠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는 한과 증오의 그늘을 세월에 삭히고 있는 것이었으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동백나무를 심는 그의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용서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세월이 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에게도 치매가 왔다. 왜 그의 일생에는 고난이 관통해 있는 것일까. 고난 뒤에 찾아온다는 행복은 결국 찾을 수 없는 파랑새인 것인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오늘의 고난을 감내하면 내일은 행복이 찾아오리라 믿고 살았지만 그의 일생을 보면 그 말도 호사가들이 지어낸 것이리라. 그는 그저 웃는다. 무엇을 물어도 그저 웃기만 한다. 동기간이 찾아와도, 자식들이 와도, 친구가 병실을 찾아도 그는 매양 웃기만 한다. 웃는 일보다 울어야 할 일이 더 많았을 그, 그가 참고 참았던 울음들이 하나하나 꽃으로 피는 것이리라. 그에게 뒤 늦게 찾아온 웃음이 슬퍼서 나는 또 종일 울었다.

김대근은?

한국문인협회/한국불교문인협회 이사/두레문학 수필분과회장/문학미디어작가회 부회장/한국문인인장박물관 부관장

저서- 시집 『내 마음의 빨간 불』, 공저-『두레문학』,『문살에 핀꽃』,『눈부신 바다』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