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실종
노무현의 실종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5.2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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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늦은 밤 울산대공원에서 실종신고가 한 건 날아들었다. 노무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노무현을 발견했다는 신고가 또 들어왔다.

신고자는 지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돌풍의 불씨를 지폈던 ‘노풍연가(盧風戀歌)’의 작가 K씨였다. 지방선거 기초의원 후보로 뛰고 있었던 그는 ‘발견 신고’ 당일 오전 8시, 하루 일정을 로터리 ‘추모유세’로 시작했다. 유세도우미들은 노란 의상과 검은 리본으로 장식한 채 일체의 율동을 생략했다. 선거 로고송은 곡이 붙은 노풍연가로 대체했다. 그는 시간 단위로 자리를 옮겨가며 추모유세를 이어 갔다. “노무현의 불씨, 제가 지켜 나가겠습니다.” 실종된 노무현은 사실상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서거 1주기’를 맞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흔적은, 적어도 울산에서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에 관한 소식은 지역신문에서도 천안함처럼 동강난 채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다. 시민 1만5천명이 기부해서 꾸며졌다는 봉하마을 박석(薄石)묘역 이야기도 울산에서는 교육의원 후보 이름만큼이나 알려지지 못하고 있었다.

22일 오후 2시부터 울산대공원 동문광장에 차려진 ‘서거 1주기 추모’ 분향소에는 겨우 500명이 다녀갔다고 지역방송은 전했다. 같은 날 저녁 7시부터 진행된 추모문화제에는 ‘폭우 속에서도 300명이나 자리를 지켰다’고 주최 측은 주장했다. 대한문과 서울광장, 김해 봉하마을을 뒤덮었다는 추모인파 소식은 그저 딴 나라 뉴스에 지나지 않았다. ‘거품’ 섞고도 고작 300명에 그쳤다는 울산 분향소의 노무현 흔적! 그에 대한 ‘실종 신고’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증언이 묘한 여운을 지구대에 남겼다.

여권의 심술과 저주 때문이었을까, ‘신자유주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을까? 원망스러운 폭우가 쓸어가 버린 탓이었을까, ‘천안함’이란 식인상어가 무자비하게 삼켜 버린 결과였을까? 몇 점 안 되는 분향소 언저리의 연노란 비닐 비옷들은, 폭우에 젖어 바닥을 드러낸 대자보처럼 처연해 보였다. 수십 개 노란색 헬륨 풍선에 검은 글씨로 옮겨놓은 ‘노짱 어록’만 뚜렷해 보일 뿐이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기금 마련을 위해 장만했음직한 짙은 노란색의 ‘노짱 손수건’ 몇 십 장이 그나마 감성의 연결고리 역을 나름대로 해내고 있었다. 밀짚모 쓰고 자전거 탄 생전의 모습과 회고의 글을 새겨 넣은 손수건의 한 장 가격은 5천 원. “바보 노무현… 당신이 가버린 다음에야 당신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연전, 언론보도들은 대통령선거 당내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그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숨통을 틔웠던 승부처가 바로 울산이었다고 전했다. 그 이후 몇몇 정치인들의 비망록은 울산에 떨어진 ‘아주 특별한’ 선물 꾸러미가 실은 바보 노무현이 따뜻한 마음으로 건넨 고마움의 증표였다고 간간이 기록했다. 울산국립대도, KTX울산역도, 울산혁신도시도 알고 보면 다 그런 연유로 주어진 선물들이라는 뒷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어느 순간 핵폐기물처럼 지하처리장 속에 묻힌 신세가 되고 만다. 세인들의 기억 속에마저 남김없이 지워져 버리고 만다. 공(功)을 대신 차지한 정객들이 자신들의 치적으로 둔갑시킨 때문이라는 호사가의 억측들도 동시에 꼬리를 문다.

“비 때문에…” ‘노무현의 실종’을 피부로 느끼게 만든 가시적 계기는 폭우였다. 야권의 한 정치인은 추모사에서 그날의 폭우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하루 앞둔 오늘 비가 내립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립니다.”

하지만 여권의 정서는 사뭇 딴판이었다. 여당 대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인 23일자 논평에서 “전직 대통령을 선거판에 끌어들여 그 죽음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발목을 걸었다. ‘참여정부 잔재’라는 거친 표현까지 구사한 그는 “참여정부 실패 책임자들이 노 전 대통령 추모 정서에 편승해서 지방선거에 대거 출마한 것부터가 노 전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결과”라는 주장도 폈다.

살아생전에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렇게도 꿈꾸었던 인간 노무현! 그는 지금 머물고 있을 저승에서마저 ‘실종 신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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