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우리들을 익충(益蟲)이라 부르고 있지만, 익충으로 불러주는 것이 저희들에게 있어서 좋은지 어떤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 의문이라는 것은, 저희들이 인간에게 보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개조되고 변형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먼 옛날부터 저희들은 인간들에 의하여 길들여 질 때 이미 자립 능력을 완전히 잃어 버렸습니다. 즉, 우리들 자신의 먹이를 자력으로 찾아낸다고 하는, 생존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들의 손으로 뽕잎을 주지 않으면 저희들이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야외의 뽕 나무에서 자라게 해 주어도 다른 야생누에와 달리 잎이나 가지를 제대로 붙들지 못하고 천길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런 운명이야말로 절망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또 있습니다. 우리들 체내에 과잉인 아미노산과 수분을 배설하기 위해 저희들은 변태한 후 번데기를 보호하기 위해 저희들은 견사(絹紗)를 토해 고치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고치는 그렇게 무겁고 클 필요가 없는데, 생사(生絲)를 얻는다는 인간의 목적을 위하여 품종이 개량돼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누에들은 신체에 비해서 과잉의 견사를 토하여 큰 누에고치를 만드는 누에가 우선 육성되기 때문에 내병성 등은 뒷전이 된듯합니다.
즉, 우리들의 신체는 큰 누에고치를 만들도록 유전자가 바뀌어져 불구자가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인간들은 생산성을 제일로 생각하고, 그러한 큰 누에고치를 만드는 동료의 사육을 장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양잠 농가에서는 건강상의 불안으로 기피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일반적으로 저희들이 사육되기 전에는 저희들의 사육장소나 그 주위에 포르말린 살포를 주체로 한 철저한 소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소독을 하지 않으면 저희들은 바이러스나 곰팡이 등의 병원균에 즉시 습격당해 전멸해 버립니다.
이와 같이 불쌍한 저희들은 극진히 돌보아주는 인간의 존재 없이는 잠시라도 살아 갈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상징적이긴 하지만 저희들은 나방이 되었을 때에도 공중을 날 수 없는 것이 서럽습니다.
날개를 푸드득 푸드득 움직여 땅 바닥에서 춤추며 도는 것이 고작이니까요.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 보는 것이 우리들의 최고의 꿈인데도 말입니다.
또 있습니다. 옛날부터 저희들 조상들은 뽕잎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뽕잎은 어떤 식물 중에서도 단백질 함량이 많고, 또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상한 것들을 섞어 인공 사료라는 것을 만들어, 그것을 강제로 우리들에게 먹입니다.
최근에야, 그 맛은 향상되었지만, 역시 옛 부터 먹어온 뽕잎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참으로 인간들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선량한 우리들마저 이토록 괴롭히고 있으니, 당신들은 앞으로 그 죄 값을 어떻게 감당하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