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영어 캠프 좋긴 한데
여름방학 영어 캠프 좋긴 한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5.1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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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상실했나 싶었더니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다. 울산시 교육청이 여름방학 영어캠프에 참가할 학생을 모집한다고 하니 여름이 눈앞에 와 있다는 느낌이 그제야 든다.

현 정부가 집권할 즈음, 정권인수위원회 관계자 한 사람이 “한국 사람은 오렌지(Orange)를 ‘아린지’라 하지 않고 ‘오렌지’라고 발음해 미국인이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자 그 다음날부터 전국에 외국어 회화 바람이 몰아쳤다.

차기 정부가 입시 전형에서 회화를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할 것이라고 예단한 사교육 기관들이 곳곳마다 외국어학원을 설립하고 외국인 강사를 채용하느라 부산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 덕택에 본국에는 일자리가 없어 한국을 기웃거리던 원어민들이 ‘입’만 가지고도 먹고 살 길이 생겼으니 대단한 횡재를 했다.

‘오렌지’발음으로 유명해진 인수위 관계자가 재직하던 대학교도 대박을 터트렸다. 정권 인수위에 참여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으니 뭔가 있겠거니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 대중(大衆)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가 근무하던 대학교는 아예 외국어 교육원을 설립했고 아직도 성업(盛業)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류(時流)란 참 희한한 것이다. 작년부터 해외 어학연수바람이 잦아들었다. 국내 경기불황 탓도 있겠지만 한국인들이 늦게나마 뭔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해외 어학연수만 갔다오면 무조건 해당 외국어에 능통할 것이란 착각에서 벗어난 것 같다. 실제로 6개월 또는 1년 정도의 단 기간 연수로는 어학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인과 어울리지 않고 2년 동안 해당 언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원어민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고 한다.

국내에서 기본적 외국어 지식을 갖추고 떠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충분한 어학 실력도 없이 무조건 해외로 나가는 청소년들은 80%이상 어학연수에 실패한다. 말하기 전에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이다. 특히 제3국인이 외국어를 배울 경우 해당 언어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반드시 갖추고 원어민의 발음을 습득해야 한다.

현지에서 원어민의 발음을 모방하는데만 지나치게 치중해서도 안 된다.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혀를 굴리며’ 원어민 흉내를 내기보다 ‘한국식 발음’을 사용하더라도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먼저다.

어학연수를 보내는 부모나 떠나는 자녀들이 착각하는 게 또 하나 있다. 어학연수를 거치면 학교 외국어 실력도 우수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 어학연수가 국내 중, 고등학교의 실제 수업이나 내신 성적 및 수능시험에 무조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외국어 듣기 과정에서 일부 효과가 있을 순 있으나 전체적인 측면에선 그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 아직 국내의 학교 학습에서는 읽기, 쓰기, 독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간혹 ‘우리 아이는 미국에서 영어 어학연수를 마쳤는데도 영어 성적이 신통치 않다’란 말을 듣는다.

이번에 울산시 교육청이 모집하는 여름방학 영어캠프는 이런 무분별한 해외 연수를 억제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비도 30~40만 원대라고 하니 해외 어학연수 비용보다는 상당히 저렴한 축이다. 하지만 걱정스런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모집학생이 1만600명이란 사실이 마음에 걸리고 수십만원씩 하는 참가비도 마땅찮다. 각 대학이나 학교에 분산해 교육하면 강의 내용, 강사의 자질, 교육환경이 다양할 텐데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시킬지 걱정스럽다. 또 3주 교육과정에 교육비가 35~45만 원선이라면 사교육 기관의 수강료보다 더 비싸다는 것도 문제다.

/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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