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 쉬운 아이들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5.0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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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은 근엄했다. 괄괄한 성격에다 사정없이 체벌을 가하는 모습은 어린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손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 날 아침, 교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환기를 시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5? 16 군사혁명 이후 전체 공무원들이 착용하던 ‘재건복’을 입고 우리 앞에 서서 선생님은 한국인의 잘못된 근성을 자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선생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말하도록 했을 것이다. 부정부패가 극심했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혼란만 야기했던 민주당 정부도 물러난 데다 군사혁명위원회가 구악(舊惡)일소와 재건(再建)을 연일 외쳐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학년이 된지 두어 달 됐을까. 아직도 교실 안에 냉기가 성성한 어느 날 오후 우리 학급은‘도난 사건’으로 교실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누군가 학교에 가지고 온 등록금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하루 수업이 끝날 무렵에 밝혀진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과외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전체 학생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 뒤 “가져 간 사람은 손을 들어라. 그러면 용서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선생님은 다음 수사기법을 동원하셨다. 교무실에서 시커먼 보자기를 씌운 통을 하나 가져와서 교탁위에 올려놓고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그 통속에 손을 넣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돈을 가져 간 사람은 통 안에 그 흔적이 남는다’고 했다. 요즘 같으면 학부모나 교원 단체들이 난리를 쳤겠지만 선생님의 말씀이 곧 하늘의 말씀이었던 당시의 아이들은 겁에 질려 떨면서도 한 명씩 그 통속에 손을 밀어 넣었다. 아무튼 그날 오후 늦게 어둠이 깔릴 때까지 우리는 숱한 수사기법에 동원됐으나 결국 수사는 미궁에 빠졌던 걸로 기억한다.

끝내 도난사건을 해결치 못한 선생님은 어린 우리를 앞에 두고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근성이 바르지 못하다. 남을 속이고 남의 것을 훔치는 나쁜 근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 정직하다. 교실에 시계나 우산을 놔두고 가도 다음날 오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일본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 대충 이런 내용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귀한 시계도 교실에 그대로 있고 우산도 다음날까지 그대로 있다니 일본 아이들은 정직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믿었다. 비닐우산만 학교에 놔두고 와도 어머니에게 혼쭐이 나던 시절, 선생님이 하신 그 말씀은 ‘일본인은 정말 정직하다’란 믿음을 우리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요즘 초등학교들은 아이들이 두고 간 물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시계, 우산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값진 것을 잃어버려도 찾을 생각을 않는다고 한다. 시계를 찾아주는 선생님에게 “그냥 버리세요. 벌써 샀는데요”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초등학교 교사들 책상서랍에는 주인 없는 시계가 20~30개씩이나 들어 있다고 한다.

일본은 1964년 동경 올림픽을 개최했다. 당시 일본은 이런 국제대회를 치를 만큼 국가 경쟁력도 갖추고 있었고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향상된 상태였다. 시계나 우산 정도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치부될 만큼 생필품들이 충분히 공급되던 시절이었다. 그 보다 24년 늦게 올림픽을 치른 우리나라에도 그 즈음 초등학교 교실은 학동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사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의 낭비성을 걱정해댔다. 학교마다 수집함을 마련하고 주인 찾아주기 운동을 벌였으나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 가끔 한국인의 근성에 대해 말씀하셨던 어릴 적 담임선생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말 한마디가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새삼 느낀다. 한국인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새긴 어릴 적 굴레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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