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야권 단일화 다툼
지겨운 야권 단일화 다툼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5.0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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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싸움이 석 달째 발목을 잡고 있다. 야권 후보단일화란 소중한 명제가 뻘구덩이에 갇혀 쉽사리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후보들은 이해관계에, 정당들은 당리당략에 코를 묻고 주변의 기대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다. 울산의 진보 양당이 보여주는 지루한 샅바싸움에 구경꾼들은 이미 지쳤고 지친 만큼 식상해졌다.

볼만한 것은 차라리 공천 반발이 가져온 여당가의 집안싸움이다. 탈당이 무소속출마란 집단항명으로 이어지고, 그만큼 관객의 흥미는 배가되고 있다. 기대와는 달리 흥행의 재미는 야권이 아닌 여권에서 선사하는 판국이다. 어느 여당후보 말마따나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 관객 동원에 일조하고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 시비는 동구청장 선거도 볼만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북구청장 선거다. 민주노동당 윤종오 후보와 진보신당 김광식 후보, 여기에 무소속 띠를 두른 이상범 전 북구청장도 3파전 구도에 끼어들었다.

북구 단일화의 이상기류는 이상범 후보의 등장 때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지면에 오르자 즉시 매도의 칼을 꺼낸 쪽은 민노당이었다. ‘정치철새’란 주홍낙인을 그의 이마에 찍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삼각대의 한 축으로 버티고 있다.

이상범 후보가 논의구도에 끼어들 수 있었던 것은 그를 포함해 야권 후보 3명이 모두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이자 노조 간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상범 후보는 2대 조합장, 김광식 후보는 7대 조합장, 윤종오 후보는 8대 노조집행부에서 조직실장을 역임했다. 물론 3자가 모두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는 점도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다.

지난 2월 8일 시작된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는 6·2 지방선거일을 40여일 앞둔 4월 하순까지도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조승수 국회의원을 배출시킨 저력을 갖고 있는 현대차노조는 단일후보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될까봐 조급해졌고 마침내 세 후보를 정치위원회의 탁자로 불러들였다. 노조 정치위원회는 ‘단일화 원칙’을 담은 합의서에 사인을 요구했고 ‘5월 5일까지’로 시한을 못 박아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시한이 다 됐지만 3자간의 논의는 다시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관객들의 관람 욕구에 다시 찬물이 끼얹어졌다. 그 과정에는 현대차지부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중재안이 말썽의 발단이 됐다. 2가지 서명문서 중 하나인 합의서 사본의 사전 유출도 분쟁의 씨앗이 됐다. 이상범 무소속 후보가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주장에 따르면 단일화를 위한 1차 중재안은 후보 3자 중 1명에게는 ‘특히 불리’, 다른 1명에게는 ‘특히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 후보도 이 점에는 모두 공감했다. 1차 중재안이란 모바일 또는 ARS방식의 여론조사를 실시하되 조사대상을 북구주민 50%, 현대차 조합원 25%, 북구 금속사업장 조합원 25%의 방식이었다. 현대차 조합원과 금속사업장 조합원 머릿수의 등가성(等價性) 문제가 가장 큰 시빗거리였다. ‘특히 불리’에 해당하는 이상범 무소속 후보가 장문의 글월을 통해 이의를 제기했다. 2만4천명 가까운 현대차 조합원과 1천700명에 불과한 금속사업장 조합원이 어찌하여 같은 비율로 값이 매겨질 수 있느냐는 지론이었다. ‘특히 유리’에 해당하는 윤종오 민노당 후보도 그 문제점을 시인하고 타협의 여지를 내비쳤다.

금속노조의 이 같은 교통정리에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작용했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가장 소중한 지상목표였고, 그 목표를 초심(初心)을 잃지 않은 금속노조가 굳건히 붙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금속노조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 후보 중 종가(宗家)의 적장자(適長子)는 뭐니 해도 민주노동당 띠를 두른 윤종오 후보이고 진보신당의 김광식 후보나 무소속의 이상범 후보는 분가해 나간 서자(庶子)로서 눈밖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치열한 모태(母胎)의식과 장자(長子)상속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북구청장 후보 단일화는 과연 성사될 수 있을 것인가? 여권의 인기몰이에 버금가는 흥행성적을 범야권 3인이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어쩌면 북구 주민이 아니라 ‘배타적 지지’의 깃발을 내리지 않고 있는 금속노조 울산지부가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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