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현실이다
정치는 현실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4.2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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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울산 정치1번지로 일컬어지던 중구에 공천 후유증으로 인한 정치적 파장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전·현직 지방의원 4명과 기초단체장 등 5명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중구 광역의원 선거구 4개 전체와 기초자치단체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광역 제1선거구 박영철 전 중구의회 의장, 제2선거구의 김기환 울산시의원, 3선거구의 박래환 현 중구의회 의장, 제4선거구의 김재열 시의원은 무소속 연대를 형성해 보조를 맞추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중구의 정치 파장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우선 무소속 출마자들의 비중감 때문이다. 5명 모두 10년 이상의 지방정치 경력을 가진 중진급인데다 조직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환 시의원과 박영철 전 구의원은 의정 경력이 12년이다. 박래환 현 중구 의장도 중구에서만 10년째 지방의원 생활을 했고 제3선거구의 김재열 의원은 의정 경험이 16년이나 된다. 이런 중진급 지역정치인들이 한꺼번에 자당(自黨)에 반기를 들고 나서자 한나라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당선돼도 절대 다시 받아들이지 않겠다. 해당 행위로 간주하겠다 등 엄포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무소속 출자자들을 바라보는 지역 유권자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역 모 언론사 여론조사 사건과 관련해 여당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에 대한 동정론이 점차 확대되는 양상이다. 사건이 처음 밝혀지고 사법당국이 조사에 착수했을 때만 해도 해당 지역선거구 여론은 이들에게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공천에서 탈락하자 비판 강도가 낮아지더니 지금은 무소속 출마 옹호론 쪽으로 기우는 곳이 적지 않다. 선거를 앞두고 언론사에서 돈을 달라는데 주지 않고 버틸 재간이 있나. 그렇다고 해서 10년 이상 ‘부려 먹은’ 제 식구를 그렇게 헌 신짝 버리듯 버릴 수 있느냐. 최근 지역 내에 이런 여론이 번지면서 여당 공천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마저 팽배해지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파장이 있기까지의 전 과정을 돌이켜 보면 당협위원장이나 시당만 탓할 일도 아니다. 그들은 중앙당의 지침에 눌려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선택하지 못한 과오를 저질렀을 뿐이다. 중앙당이 지역 차원의 현실을 무시한 채 명분만 내 세우며 ‘제 식구’를 희생시키라고 했을 때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지 못한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특히 언론사 여론조사 사건과 관련해 낙천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중앙당의 지침에 끌려 다니다 울산시당이 희생시킨 경우다.

여론조사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울산시당도 처음엔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일의 상당부분이 언론사 측의 요구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유보적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당초에 사용했던 ‘공천배제’ 란 용어 대신 ‘선별 구제’란 이야기가 흘러 나왔고 마지막엔 ‘당규에 명시돼 있지 않은 한 공천대상’이란 선까지 물러섰다. 하지만 울산 한나라당이 이렇게 유보적 태도를 취하자 지역야권과 시민단체가 반발했고 울산 시당으로 부터 최종 결단을 위임받은 중앙당은 ‘자르라’고 지시한 것이다. 전체 선거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던 중앙당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손발의 일부를 희생시키고 만 셈이다. 그리고 울산 한나라당이 무기력하게 그를 받아들임으로서 현재 울산 구도심에 정치적 풍파가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게 정치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전·현직 지방의원4명과 기초단체장 1명은 한나라당과의 인연을 쉽게 끊으려 하지 않고 있다. 선거를 위해 잠시 당을 떠날 뿐 승리해서 복당하겠다고 한다. 당협위원장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제의 동지였던 그들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비난을 자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어색한 관계는 1년만 지나면 순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다가오면 올수록 그런 해빙분위기는 짙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적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동지도 아닌 중간자적 위치를 서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역 정치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엊그제 공천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사람은 당선되더라도 일체 복당을 허용치 않겠다고 발표했다. 정치는 곧 현실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또 다시 일을 그르칠 모양이다.

/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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