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孃)들의 침묵
양(孃)들의 침묵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4.2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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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母性)은 강하다. 그러나 여성(女性)은 약하다.

제5회 지방선거 공천지도 열람에서 나타난 울산 한나라당의 정서적 현주소다.

“진보 단일후보를 꺾을 후보는 여성뿐입니다. 중앙당에서 (여성 몫을) 그렇게 요구했는데도 아무 반응 없고 도리어….”

유일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인데도 공천경합에서 발을 빼 달라는 당협위원장의 일방적 요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최윤주 북구청장 후보의 딱한 하소연이었다.

“용기를 주십시오.” 8년간의 의정활동에다 후반기 의장이란 관록을 후광 삼아 기초단체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윤명희 시의회 의장의 고개 숙인 호소였다. 당협위원장의 노련한 교통정리 솜씨 때문에 ‘계속주행’의 의지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타는 속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었을까?

울산 지방자치 20년. 하지만 여성정치인에 대한 울산 한나라당의 배려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란 평가다. 그 정치투시도는 광역·기초의원 후보 공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광역의원 후보 19명 가운데 여성후보는 재선에 도전하는 중구1선거구의 이죽련 시의원과 남구2선거구의 송병길 후보 단 2명, 10.5%에 지나지 않았다. ‘여성 몫’에 모든 것을 걸고 지역구 시의원 후보 공천을 신청했던 송미경(비례대표 시의원), 나은숙(비례대표 동구의원) 두 지방의원은 맥없이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이들 역시 당협위원장의 눈에는 시쳇말로 ‘별 영양가(=당선가능성) 없는’ 인물로 비쳐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기초의원 후보는 공천 차별이 훨씬 더 심했다. 총 40명 가운데 ‘중구 라’ 선거구의 장정옥(비례대표 구의원), ‘동구 가’ 선거구의 박은심, ‘남구 마’ 선거구의 박미라, ‘북구 나’ 선거구의 이 란 후보 등 4명(10%)이 전부였다.

한나라당의 ‘여성 푸대접’ 현상은 진보진영의 공천지도와 비교할 때 더 한층 뚜렷해진다. 울산 민주노동당의 경우 시장 후보를 제외하고 이미 확정된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 후보 33명 가운데 무려 12명이 여성이었다.

동구와 북구의 기초의원 비례대표 후보 2명이 추가로 정해지면 여성 후보는 14명으로 늘어난다. 35명 중 14명이면 40.0%라는 엄청난 비율이다(한나라당은 10.1%). 민주노동당은 여성에 대한 배려로 당헌·당규에 지방의원 비례대표 후보 제1번을 여성에게 할애하도록 못을 박아 두었다.

그런 배경 아래 북구지역 시의원 후보로 나선 민노당 이은영, 하현숙 후보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런 구호를 내세웠다.

“여성이 웃어야 울산이 행복하다.”

그렇다고 한나라당 울산시당이 손을 마냥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당 여성위원회가 여성 정치참여의 길을 넓혀 주겠다는 취지로 문을 연 ‘여성정치 아카데미’가 현재 11기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정치적 생사여탈권을 거머쥔 당협위원장들이 중앙당 방침까지 짐짓 외면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 정치지망생들이 ‘함량 미달’이라고 판단해서일까?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고개를 흔든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사표시다.

당협위원장들의 남성중심, 가부장적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줄서기에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훨씬 덜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성의 ‘조직에 대한 기여도’나 로비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존재한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두드러졌고 그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울산시교육청 통계가 좋은 잣대다. 지난해 4월 1일 현재 울산지역 여성교사 비율은 초등학교가 75.4%로 가장 높고, 중학교가 70%, 고등학교도 50% 수준(인문계 48.7%, 전문계 50.8%)은 된다. 이 비율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게 교육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유독 여권(與圈)의 정치판만은 여성들에게 금줄을 쳐놓은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권(女權)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양(孃)들의 침묵’, 더 이상 강요하진 말았으면 해요.” “출산만 해놓고 양육을 포기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해요.”

공천에서 쓴 잔을 마셨던 몇몇 여성 정치지망생들의 뼈 있는 항변이었다.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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