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리본, 가슴에
검은 리본, 가슴에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4.1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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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항공기 참사로 국가 수뇌부를 비롯해 96명이나 되는 인재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폴란드 국민들. 그들은 국가적 슬픔을 안으로 삼키면서 불과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한 한 외신은 “유례없는 참사에도 큰 흔들림이 없는 폴란드의 저력은 ‘민주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하버드대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는 12일자 기고에서 “폴란드가 특정인이나 유일정당의 권위에 의지해온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 안정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의의 초계함 사고로 40명이 넘는 해군 장병들이 서해 연평 앞바다에서 실종됐다는 비보를 접해야 했던 한국의 국민들. 참사 발생 스무날이 가까워오지만 우리 국민들은 슬픈 표정을 애써 지어가며 주류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천안함 속보’에 아직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참사의 여파는 울산에도 미쳤다. 벚꽃 잔치가 일주일 연기되는가 하면 고래축제는 두 달이나 늦추어졌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는 ‘표정관리’가 두드러졌다. 시장 후보도 구청장 후보도 정견이나 공약 발표에 앞서 숙연한 몸짓과 말투로 애도를 표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정도는 진보진영 후보일수록 더 심하더라는 뒷공론도 있었다.

얼마 전 주류 언론들은 병실가운 차림의 생존 장병들 사진과 함께 감성적이고 눈물 나는 제목들을 대문짝만하게 뽑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 돕기 모금행사를 주도한 어느 방송사는 실종자 그들을 ‘영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비슷한 참사를 겪은 폴란드와 코리아. 무엇이 두 나라 국민 사이에 이렇게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 무르익거나, 설익은 민주주의 완성도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 해답 제대로 알려줄 사회지도층 인사 계시면 손 한 번 들어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새내기 학창시절 즐겨 불렀던 애창곡의 하나다. 스코트 매켄지가 부른 이 노래는 샌프란시스코에 둥지를 틀고 반전(反戰)과 평화 운동에 앞장섰던 히피(hippie)들의 찬가이기도 했다.

천안함 참사를 가슴에 끌어안으면서 번안해서 붙이고 싶은 노랫말 제목이 하나 있다.

“한국에 가면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다세요.”

하지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 하나 가슴에 검은 리본 달았더라는 소리는 아직껏 들은 바가 없다. 위정자들의 그럴싸한 립 서비스처럼 실종 용사들이 반드시 살아 돌아오리란 믿음에서일까, 그도 아니라면 ‘실종은 사망이 아니라’는 물리적 해석에서 비롯된 현상일까?

천안함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참사 이후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실종자들이 그득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함정의 뒷부분(艦尾)이 17일 만에 끌어올려졌지만 살아 있기를 애타게 고대하던 가족들의 염원은 뒷전인 채 실종자 수색은 또 다른 이유가 붙으면서 미뤄졌다. “한시가 급하니 인명부터 구조하라!”던 고위관계자의 당부말씀이 아직도 국민들의 귀에 쟁쟁한데 말이다.

지금 이 시점, 위정자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 청와대와 중앙정부 고위층을 비롯해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솔선해서 가슴에 검은 리본부터 달자는 당부의 말이다. 그리고 날을 잡아 ‘국민애도기간’으로 선포한 다음 온 국민의 가슴에도 검은 리본을 달게 하자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반드시 머리에 꽃을 꽂아야 한대요.

하지만 코리아에 가면/ 반드시 가슴에 검은 리본부터 달아야 해요.”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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