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 박문태 기자
  • 승인 2010.04.0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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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나눈 말이라고 전해진다. 이 말에 조금 예민하게 반응하여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로 바꾸어 본다. 우리말에서 ‘∼만’의 뜻을 곱씹어보게 하는 말 바꾸기이다. 바꾸는 김에 부처는 그대로 두고, 돼지를 도둑놈으로, 사기꾼으로, 소매치기로 바꾸면 도둑 잡는 데에는 도둑을 활용해야 하고 사기꾼 잡는 데에는 사기꾼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논리가 나온다. 사실 소매치기 잡는 데에는 소매치기가 제격이다. 서로를 금방 알아보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유유상종(類類相從)이기 때문이다.

첫 사랑을 못 잊어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다 자기처럼 첫 사랑을 못 잊어 할 것이라고 여겨 첫 사랑의 추억을 되씹는 버릇이 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세상을 쉽게만 보는 사람은 가게에 권총 강도가 들어와 총을 들이대어도 ‘돈은 또 벌면 되니까 당신이 다 가져가도 된다.’고 하여 LA의 우범지역에서 목숨을 보전하고 돈도 번다. 어려서부터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다 정직하다고 생각하여 새치기 한 번 못하고 빌려준 돈 다 떼이고 겨우 겨우 살아가면서 아직도 정직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에 해당된다.

시사성(時事性)있게 부처와 돼지를 다시 선거꾼과 정치꾼으로 바꾸어 요즈음의 정치판을 들여다본다. 선거철이 되니까 개 눈에는 뭐만 보이듯이 선거꾼에게는 입후보자로부터 뜯어낼 돈만 보인다. 정치꾼의 눈에는 이타적(利他的) 자기희생은 온 데 간 데 없고 이기적(利己的) 표(票)밭만 보인다. 6월 2일(수요일) 투표일에 어떻게 하면 나한테 한 표라도 더 찍게 할 수 있을까의 표만 보이는 것이다. 그 표를 찾아 별의별 공약을 다 만들어낸다.

정치꾼의 술수(術數)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유권자가 누구를 찍을까 의사(意思)를 결정 하는 순간, 즉 투표하는 순간을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유권자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 협박에 의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선거운동에 현혹되지 않고, 입후보자들을 프로파일 분석법으로 요모조모 뜯어보고 누구를 찍을까 결정해놓은 상태라면, 투표하는 칸막이에서 망설임 없이 자신이 지목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 옆의 빈 칸에 바로 도장을 찍을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원론적으로 바라는 투표행동이다. 이런 투표행동은 유권자 중에서 투표소에 나간 투표자의 20% 내외이다. 이것은 복잡한 추론에 의한 것이고 시대적, 사회적(지역적)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인데다가 예측한 통계가 아니고 개표한 뒤의 결과적 추리 분석이어서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음으로 투표자의 20% 정도는 선거운동의 참신성과 적극성(이것을 묶어서 유권자에게 얼마나 눈에 뜨이느냐(appeal)의 광고 전략과 같은 것으로 풀이하기도 함)에 따른 영향을 받는다.

거론하기도 부끄러운 자유당 시절의 문맹자들을 전제로 한 선거운동에서는 이름도 필요 없고 아라비아 숫자도 필요 없고 작대기, 그것도 세 개 이상은 혼동을 일으킨다고 기호 1 번의 ‘작대기 하나 옆에 찍으세요!’가 효과를 보았다. 당시는 자유당의 횡포로 기호 1번을 선점하였다. 그러고서 세월이 지나며 집안 망해 먹으려고 이 당(黨) 저 당(黨) 옮겨 다니며 계속 입후보하여 재산을 탕진한 사람에게 동정표가 작용하여 몇 몇 사람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나머지 60%는 ‘기타’의 영역에 들어가며 이것을 두고 입후보자들이 신경전을 벌인다. 정당에 배당되는 번호가 ‘기타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내가 너그러우니 상대방도 나를 너그럽게 보아줄 것이다는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이것저것 끌어다 따지고 있으니 가장 객관적인 투표방안을 제시한다. 투표할 사람의 이름을 투표지에 쓰게 하는 것이다. 문맹자는 선관위에서 봉사자를 선발하여 도와주도록 하면 된다. 국격(國格)을 자랑삼을 만한 것이다. 이것이 번거롭고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투표지에 입후보자의 이름과 기호가 투표지에 무순으로 섞여서 특정 정당의 입후보자가 맨 앞에 있다는 시비꺼리를 예방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입후보자의 기호가 이름 앞에 나타나지 않게, 조건 없이 투표용지에 이름만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투표용지마다 이름이 나타나는 순서가 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을 창안한 나라로 알려질 방안이다. 이번 선거에는 울산만이라도 시행해볼 방안이다. 유권자 모두가 부처님 눈으로 서로를 보게 하는 것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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