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읍성은 왜 복원하지 않는가
울산 읍성은 왜 복원하지 않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3.3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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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중구 태화동 태화루 복원부지에서 통일신라시대 건물터와 신라, 고려, 조선 시대 유물 20여 점이 출토됐다. 이들을 살펴본 울산시 문화재위원들은 이곳이 임진왜란 당시에 소실된 태화루터 일 가능성이 높다며 추가 발굴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출토된 기와 유물 외에 토기나 도자기 같은 생활유물도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연말까지 7억원을 들여 남쪽 암벽지역을 복원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태화루는 7세기 말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태화사에 속해 있던 누각 중 하나로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여러 번 중건을 반복하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됐다. 그래서 태화루에 대한 그림이나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다.

지난해 11월 울산시는 2013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비 488억원을 확보해 태화루 복원에 나섰다. 태화루에 대한 뚜렷한 고증 자료가 없기 때문에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등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축조된 누각의 건축양식을 본 따 복원키로 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역대 왕(王)들을 괴롭혔던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가 남, 동해안에 출몰해 약탈을 자행하던 왜구였다. 특히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와 근거리에 있던 울산, 부산, 동래 해안지역은 이들의 노략질로 민가가 거의 없을 정도로 피폐했다. 고려 우왕 때 쌓은 울산 읍성, 조선조 태종17년에 건립한 병영성, 연산군 6년 언양읍 일원에 개축한 언양 읍성 등은 모두 이렇게 창궐하는 왜구에 대비해 축성한 것들이다.

그중에서 중구 동동, 남외동, 서부동 일원에 있는 병영성과 언양에 있는 언양읍성은 최근에 복원 및 정비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병영성을 가꾸는 사람들’이 중구청과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병영성 복원·정비사업을 추진한 결과 올해부터 41억원을 투입해 성곽주변을 정비키로 했다. 매년 국비 30억원씩을 투입해 2017년까지 사업을 완료할 예정에 있다.

언양읍성 주변도 정비·복원되고 있는 중이다. ‘언양읍성 복원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울주군을 여러 차례 설득한 결과 내년부터 50억원을 들여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간다. 최근에 정비 및 복원사업을 위한 용역조사가 끝났다.

그러나 병영성과 똑 같이 정유재란 때 허물어진 울산읍성은 누구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다. 물론 병성성은 조선 철종 때 재 축성돼 현재 성곽이 잔존하고 있지만 울산읍성은 그 형체가 거의 소멸됐다는 차이점은 있다. 하지만 누각 액자만 있고 형체조차 묘연한 태화루 재현(再現)에 500억원에 가까운 재원을 투입하면서 조상들이 외적과 마주해 싸웠던 성곽복원은 안중에도 없다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울산읍성을 완전하게 복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倭軍)들이 성곽을 뜯어가 왜성인 현 학성을 축조했기 때문에 우선 읍성 위치가 불확실하고 성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남쪽 지역이 구 도심권인 중구 옥교, 성남동 지역이어서 이 지역을 허물고 성곽을 복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성곽 북쪽 부분은 일부 복원이 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왜군들이 성곽을 해체할 때 시간에 쫓겨 상층부만 뜯어 갔을 것이기 때문에 현 북정동, 교동 일부에 그 기저(基底)가 남아 있을 것이므로 그 쪽 부분은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울산읍성 복원문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는 사실상 다른 곳에 있다. 성곽의 잔존 여부보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형체조차 없는 누각도 ‘추진 위원회’가 밀어붙여 일을 성사시키는가 하면 성곽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으니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종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이 지역은 조만간 재개발이 시행될 곳이다. 지난 400년간 땅 속에 묻혀 있던 울산의 작은 흔적마저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지만 읍성 복원을 추진하는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다.

/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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