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절대성
종교의 절대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3.1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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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보통 사람들의 말로 어느 어른이 죽으면 존댓말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조금 품위를 챙긴다고 문자를 써서 표현하면 ‘별세(別世)하셨다’고 하며 이것도 높은 관직을 거쳤으면 ‘서거(逝去)하셨다’고 한다. 최근에 전직 대통령이 자살했어도 사거(死去)라고 하지 않고 서거하였다고 하였다.

유교적 전통에다가 존댓말 사용에 까다로운 우리말은 죽음에 대해서도 신분에 따라 차별을 두어 임금이 죽으면 ‘승하(昇遐)하셨다’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스님이 죽으면 입적(入寂)하였다고 한다. 같은 입적이라도 수행과 가르침에서 뛰어난 스님의 경우에는 열반(涅槃)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입적과 열반은 말뜻으로는 차이가 없다. 단순히 어떤 관습으로 법정(法頂) 스님이 돌아가신 것을 두고 열반(涅槃)하였다고 한다. 특히 열반과 해탈(解脫)이 깨달음의 최고 경지라는 면에서 차이가 없는데도 열반을 즐겨 쓴다.

법정 스님의 열반을 두고 기독교 신자(천주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법정과 마주 보며 합장을 했기 때문에 묘한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구체적으로 개신교 신자의 극히 일부가 ‘박재철(법정의 속명)은 지옥에 갈까 천당에 갈까?’를 거론한다. 아주 작은 질문이지만 한국 사람들 끼리 기독교도는 ‘극락’이 불교 용어라고 피하여 ‘천당’이라는 말을 쓰며, 번역의 문제가 있긴 했으나 연옥은 천주교에서 자주 쓰며, 지옥은 불교나 기독교가 서로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말장난으로 지옥은 같은 장소이고 극락과 천당은 다른 장소이다.

국민교육헌장의 기초 작업을 하였던 철학자 박종홍(朴鍾鴻) 선생이 생전에 한국사상(韓國思想) 대신 한국철학(韓國哲學)을 즐겨 쓰며, 철학은 나를 여기에 놓아두고 저 멀리 밖에 있는 객관적이라는 가면을 덮어씌우고 그 겉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철저히 파고드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달리 표현하면 나의 가치관을 파고드는 것이다.

한국철학 속에서 우리의 종교와 그 속에서 다시 나의 종교를 찾아본다. 출발점으로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이 어느 삶에서건 탐구(探究)되어야 한다. 그 길을 여러 종교에서 안내하기 때문에 종교를 상대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되새겨본다. 우선 내가 절대적인 존재, 이 세상에 내가 있다는 절대성은 부인할 수 없다. 당연히 다른 사람도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논리적으로 공평한 것이다. 객관성을 살린다고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나의 종교를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기준을 세워놓는 것 자체가 과학성(科學性)의 기본적이고 절차적 요소이다. 종교에서 논리성, 과학성을 찾으려고 하면 일관성 없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의 집필 동기를 ‘무신론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현실적인 열망이고, 용감한 행위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썼다’고 하며, 무신론자가 되는 것의 절대성을 주장하였다.

일상용어로 절대(絶對)와 상대(相對)가 있다. 절대에는 크고 작고, 무겁고 가볍고, 좋고 나쁘고의 비교가 없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교육에서 절대평가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 절대적인 존재는 신(神) 밖에는 없다며 어떻게 교육이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합격 또는 불합격이 있을 뿐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는 이해가 부족해서 나오는 소리이다.

종교에서 절대는 존재하는 그 자체일 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상대에는 언제나 비교가 있어서 1등이 있고, 꼴등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동등 자체도 두 개 이상을 비교하여 나오는 결과적인 개념이다. 그러니까 종교는 그 자체로서 비교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개념이다. 법정 스님의 열반을 두고 상대적인 개념을 적용시켜 비교해서는 종교적인 틀을 벗어나서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도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종교의 이런 절대성 때문이었다. ‘모든 게 끝나야만 한다고 말해도 좋아요. 심지어는 그런 척하면서 웃어도 좋아요. 등을 돌리고 미련 없이 쉽게 떠나가도 좋아요. 하지만,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는 마세요.’ 종교의 절대성으로 기도한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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