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 정치이변
기상이변, 정치이변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3.1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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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받는 <이OO의 건강편지>는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로 시작되는 황동규의 시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을 인용하며 3월 10일자 편지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온 세상이 눈밭입니다. 무식한 전봉준이 아니라…유식한 최제우가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처형당한 오늘(1864년), …무실역행(務實力行)을 외친 식자 안창호가 병보석 중 세상을 떠난 오늘(1938년), 세상이 3월의 폭설에 덮였습니다.]

일요일부터 시작된 3월의 눈이 우박과 비와 나흘 내리 순서를 바꿔 가며 울산 시가지를 덮어갔다. “풍년 들 조짐이니 길조”라는 해석과 “보기 드문 기상이변이니 흉조”라는 해석이 맞물려 돌아갔다. 울산 정치판 꼬락서니를 보니 하 기가 차서 하늘이 노하신 게 아니냐는 기상천외한 풀이와, 정치이변이 기상이변을 몰고 왔다는 농담도 끼어들었다.

어느 지역 일간신문이 일으켜 놓은 ‘선거여론조사 파문’이 이래저래 초봄 구설의 윗자리를 차지했다. 돈 놓고 돈 먹기 식 ‘야바위 정치’가 추한 자락을 드러내면서 정치기상도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호재 만난 야권에서는 논평과 성명서를 숨 가쁘게 쏟아내더니 급기야는 검찰청사 문턱을 밟기까지 했다. 분통 터진 시민단체는 ‘선거 브로커’란 용어까지 구사하며 가시 돋친 비판을 토해 냈다. 추이를 관망하던 여권에서도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전원 당 소속인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출당 조치도 불사한다는 강수를 던졌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 뒤끝에 감탄사를 다는 이도 생겼다. 돌발변수가 우박처럼 쏟아지더니 공천 놀이판을 어지럽게 헝클어 놓은 것을 목격한 뒤의 일이었다. 달라진 것은 한둘이 아니었다.

재선 삼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게 생긴 선출직들의 안색이 하얀 눈빛으로 바뀌었다. 이 무슨 횡재냐며 커튼 뒤에서 ‘콜’을 외치던 대기 주자들은 거울을 닦으며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갑작스런 정치이변이 화장 고치는 여성 정치지망생들의 립스틱 농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이나 써야겠다고 떠벌리는 이야기꾼도 나타났다.

어찌 보면 기상변수는 정치변수와 유의미한 함수관계에 놓일 수도 있다. 단체장선거에 도전장을 던진 정치신인 이 아무개 씨가 그런 짐작을 가능하게 했다.

이름 석 자 가운데 두 자가 공교롭게도 운(雲)과 우(雨)인 그는 출마 기자회견 때 비를 만났다가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 억수 같은 폭우를 맞았고, 첫 공약 발표 때는 눈과 우박까지 마주쳐야 했다. 그때마다 기지와 유머로 넘기는 여유를 보이던 그에게 어쩌면 정치는 풍운(風雲)으로 각인될 것인지.

[…춘설(春雪)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요? 눈길, 빙판길, 눈석임물에서 너무 빨리 가지 말고 조용히, 조용히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역사도 되돌아보고 그 어떤 사람도 떠올려보라는 뜻일까요?]라고 적어 내려간 <이OO의 건강편지>는 편지의 마지막을 김수영의 시 ‘눈’으로 장식했다.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줄 건너 두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廢墟)에 폐허(廢墟)에 눈이 내릴까>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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