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3.0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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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 필자가 울산 학성고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학교게시판에 ‘브라스밴드 창단 ’에 관한 공고가 나붙었다. 그 때만 해도 울산에는 고등학교 수가 남녀 합쳐 다섯 손가락 꼽을 정도였는데 그나마 브라스밴드가 있는 학교는 울산공고가 유일하였다. 그날 저녁, 필자는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브라스밴드 입단 허락이 떨어지기 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갈 생각은 않고 무슨 뚱딴지 같은 브라스밴드냐”고 호통을 치신 다음 묵묵부답이셨다. 툭 하면 백일장이다 뭐다 해서 수업을 빼 먹는 외아들의 학교생활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터라 허락을 받아 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극심한 통증과 함께 저려오던 두 다리의 감각이 아예 무뎌질 즈음 아버지는 갑자기 헛기침을 몇 번 하시더니 무겁고 오랜 침묵을 깨뜨리셨다.

“니 그마이 악기가 불고 싶나?”

“예, 아부지”

“그마이 불고 싶다카머 마 우짜겠노. 대신에 공부에 지장 있시머 안 되능기라. 명심해라. 그라고 악기는 반드시 ‘크라리네뜨’ 하그라.”

필자는 며칠 뒤 학교 음악실에서 세계 정상급 Y사의 명품 클라리넷을 지급 받고 가슴이 터질 듯한 희열을 맛보았다.

클라리넷은 관악기 중 유일하게 폐관진동(閉管振動)을 하므로, 낮은음부터 높은음까지 다양하게 낼 수 있다. 표현력도 풍부해 관현악·실내악 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에도 두루 쓰인다. 또한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색과 화려한 음질이 특징으로 꼽힌다.

취주악에서는 관현악의 바이올린과 맞먹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클라리넷이 그 음악성을 인정 받아 관현악에 고정적으로 쓰인 것은 18세기 끝무렵부터인데 모차르트는 이 악기의 진가를 가장 잘 드러나게 한 작곡가였으며, 이후의 작곡가들도 그 특성을 잘 활용하였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는 모차르트가 남긴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이자 협주곡 장르에서의 마지막 완성품으로 클라리넷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다. 오스트리아 빈 궁정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 안톤 슈타들러를 위해 작곡한 이 곡은 다양한 음역을 오가며 화려하게 전개되는 1악장,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OST로 쓰여 유명해진 우수 어린 2악장, 모차르트 특유의 장난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3악장이 매끄럽게 연결된다.

특히 아름다운 선율의 2악장은 협주곡이라기 보다는 실내악곡적인 분위기로 흐느끼는 듯 이어진다. 만년의 모차르트가 마치 죽음을 예감한 것처럼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1986년 12월 한국에서 개봉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당시 국내에서 35만 명의 관객을 동원, 87년 외화수입 4위에 오른 바 있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밀어(密語)를 나누는 이 영화는 지금도 올드팬들에겐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덴마크 출생의 여류 작가 아이작 디네센(본명 카렌 브릭센)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아프리카의 케냐를 무대로 화려한 영상미가 돋보였던 목가적인 사랑 영화다.

사반나 대초원의 끝없이 펼쳐진 푸르름과 함께 언덕 위에 평화로이 앉아 있는 암사자의 모습 등 아프리카의 서정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수채화처럼 연출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배경음악으로 깔린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는 40대 이상 영화팬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의 선율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대평원을 여유로이 거니는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초원을 붉게 물들이며 석양은 뉘엿뉘엿 지고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는 은은히 울려 퍼진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봄이 오는 길목에서 클라리넷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명화다.

/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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