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
고독과 외로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3.0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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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고독’을 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의 상태로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외로울 것이라는 풀이가 뒤를 잇는다. 사전에 ‘외로움’은 홀로 쓸쓸하며 고독함이라고 되어있다. 두 낱말은 한자어와 순수 우리말이라는 것 말고는 사전적 순환정의(循環定義)에 걸려든다. 이런 순환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고독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다른 정서(情緖)를 찾았다. 기다림과 그리움에서 조금은 실마리가 잡혔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소설가 빅셀(스위스에서 장편(掌篇) 소설가로 유명)은 고독하지도 않고 외로워하지도 않는다. 금년 75세이어도 기다리고 있으면 그것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에 고독하지 않은 것이다. 기다림은 그리움에서 나오며 그리워하면서 그와 언제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므로 지금 기다리고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것이다. 기다리고 있는 그 대상은 참새가 전깃줄에 앉아서 기다리는 그 무엇일 수도 있고, 수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자기 부인일 수도 있다. 빈 집 같은 큰 집에서 작은 방 하나만 쓰며 칼럼거리를 찾아 혼자서 생각에 젖어 있으면 기다림이 있기 때문에 평화롭고 아늑함을 느낀다.

그러나 답답해서 생기는 고독이 있다. 대학의 어느 교수는 둘레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과 비슷한 무리들이 잡담하고 있을 때, 옆에서 듣고만 있어도 고독하게 된다. 그는 필기시험만으로 기자가 되었다. 사회정의(社會正義)는 도덕시험의 답안지에만 있으면 된다는 생활신조로 살면서 온갖 못된 짓으로 자기 잇속만 챙겨오다가 해직기자(解職記者) 사태 때, 그 명단에 얹혀서 해직되었다. 그래도 신문사에 뜻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의 지혜로 ‘이때다’ 하고 쫓아내버린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지, 이런 사람이 온갖 계략을 써서 교수가 되고, 교수사회의 특정한 단체에 들어가 해직기자 출신이라는 명예와 정권의 희생자라는 동정을 받으며 역시 자기 잇속만 챙겼다. 자기 학과에서 전공연구, 학생교육, 사회봉사 실적은 전혀 없으면서 기자정신이라고 ‘off-the-record’의 약속을 다음 날로 깨버리는 사람이다. 돋보기는 이런 사람이 멀리서 눈에만 들어와도 답답한 고독을 느끼게 된다.

옛날 천동설(天動說)이 판을 치고 있을 때, 지동설(地動說)의 코페르니쿠스(또는 갈릴레오)는 무척 고독했을 것이다. 대학에서 근엄함의 표본이라고 할만큼 위선적인 권위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이 휴거(携擧)가 일어나면 자기는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뻐길 때, ‘내가 죽으면 내 몸을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긴 다른 교수는 현기증이 일어나는 고독감에 빠질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은 궁형(宮刑)을 받고 약 15년 동안의 고독을 사기(史記)집필로 달래었다. 포로가 되면 자결해야 하는 시절에 적군의 군사비밀을 아군에게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탈출하여 돌아온 친구를 위해 임금에게 진언했다가 가장 굴욕적인 궁형을 당한 것이다.

삼겹살의 배불뚝이가 된 옛날 동료들이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 병문안을 와서 ‘얼굴 좋네. 멀쩡하구먼’ 하며 떠들다 돌아가고 나면,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이 사람은 눈물 맺히는 고독을 느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일 쇼크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논할 사람 없이 혼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에 오늘의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로 이런 고독 속에 파묻혀 있을 모습을 오버랩 시키면 동정심의 고독이 일어난다. 이렇듯 고독은 둘레에 사람들이 들끓어도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없으면 생긴다. 말이 오고 가는 상호작용의 소통이 안 되어서 그렇다.

외로움은 외아들처럼 혼자라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들판에 미루나무가 한 그루만 있으면 외로운 모습이다. 호남평야의 논 가운데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으면 외로운 외딴 마을이다. 그러나 경남 산청의 남사마을 돌담길(등록문화제 281호)을 귀성길에 고향 찾아 혼자 왔어도, 골목길 걸어가며 이제는 어디 사는지 알 수도 없는 뻥쇠(사내 아이 별명), 꼭지(딸아이 별명), 말순이, 칠봉이를 떠올리며 ‘잘 지내지?’라고 중얼거릴 때, 우리는 외롭지 않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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