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도 종류가 있다
눈물에도 종류가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3.0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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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태준은 눈물을 압화(押花)라고 한다. 압화를 우리말로 새기면 눌러 놀 압(押), 꽃 화(花)하여 ‘눌러놓은 꽃’이다.

토끼풀 밭에서 네 잎 토끼풀(클로버)을 발견하면 이것을 따서 책갈피에 끼워 눌러놓았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행운을 보내달라고 주는 그 풀잎도 눌러놓은 풀이다. 옛날의 식물채집이 압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말로 ‘꽃누르미’라 한다. 이 낱말은 아직 우리말 사전에 올라있지 않지만 리듬이 있는 멋있는 말이다. 문태준의 말대로라면 눈물은 눈 주위를 눌러서 나오는 물로서 이것이 꽃(매화)과 같이 아름다울 때 압화라고 불러 마땅하다고 상징화(象徵化)한다. 바로 김연아가 밴쿠버 프리 스케이팅을 실수 없이(clean) 마치고 나서 ‘아, 해냈어!’, 스스로의 감격으로 나온 눈물을 그는 압화라고 했다. 이 눈물은 시상대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작은 소리로 따라 부를 때 나오는 그 뭉클한 눈물과는 다르다.

이처럼 눈물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눈물을 흘리는 연유가 여러 가지로 나뉜다. 흔히 목격하는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다. 어쩔 수 이별해야 하는 부모님의 상(喪)때, 흘리는 눈물이 슬픔의 대표적인 눈물이다. 미안한 눈물도 있다. 중풍으로 쓰러져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수년간 병석에 있다가 임종하면서 사랑하는 자식 앞에서 흘리는 미안한 눈물이 그렇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눈물은 누가 볼 세라 혼자 울고 마는 눈물이다. 본능적 감정과 현실적 판단이 부딪히며 파열하는 눈물이다.

억울해서 가슴이 복받치는 눈물이 있다. 나라님에게 향한 마음은 일편단심인데 간신배들의 농간으로 유배되어 갈 때 흘리는 눈물이다. 이 눈물에는 엉엉 소리가 나오고 그 소리는 계곡으로 울려 퍼진다. 정년퇴직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월요일 아침 넥타이를 매다가 ‘당신 뭐 하는 거요?’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서글픈 눈물이 흐른다. 시인 천상병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을 때마다 울었다. 이때의 울음은 천사의 눈물이 흐르는 아주 조용한 울음이었다. 어느 아동 문학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생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꾸며 발표하라는 요구에 아무도 발표하는 학생이 없어 난감해 하는 교생선생님을 도우려고 앞에 나가, ‘…다른 친구의 나무들은 쑥쑥 자라는데 내가 기르는 나무만 자라지 않아 나무를 붙잡고 울었어요. 그랬는데 내 눈물을 먹고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어요.…’라는 즉흥적 발표를 했다. 수업을 참관하러 오신 다른 선생님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수업이 끝난 뒤 그 교생선생님은 고마운 눈물을 흘리며 ‘강소천 선생님 같은 아동문학가’가 되라고 하였다.

가난에 시달리고 천대(賤待)까지 받아 눈물이 메말라버린 마른 울음이 있다. 울려고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인도의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의 초점 없는 울음을 간디는 보듬어주며 마음으로 닦아주었다. 베트남의 호지명도 식민지 월맹 사람들의 울음을 가슴으로 달래었다. 물론 네로 황제의 눈물도, 악어의 눈물도 있지만 성격장애자는 거짓으로라도 눈물을 흘리지 못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의 사장 시절에 국보위에 불려가서 현대자동차를 포기하고 발전설비만 선택하라는 강요를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받았다. 정주영 당시 회장을 대신하여 국보위와의 혈투였다. 마지막 날, 밤늦도록 국보위에서 현대자동차를 포기하는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돌아와 정 회장을 만났을 때, ‘어이, 당신 눈에서 피가 나고 있어. …거울을 보라고.’ 하여 거울을 보았을 때 피눈물이 나와 있었다(신화는 없다. p. 175). 이랬던 그가 다시 피맺힌 눈물을 흘릴 것 같아 걱정이 되면서 당장 올림픽의 선수들을 다른 차원에서 걱정하게 된다.

여기 울산은 거리도 멀고, 말길(言路)이 뚫리어있지 않아 안타깝지만 우리와 같이 걱정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밝혀둔다. 조그만 학예회 같은 연극을 해도 한 두 달의 연습 뒤에 발표회가 끝나면 어린 마음에도 커다란 허탈감이 몰려온다. ‘내일은 뭐 하지?’의 허탈감이다. 지금 올림픽 선수들 모두가 해단식을 마치면 더 큰 허탈감에 빠져들 것이다. 메달을 탔건 못 탔건 모두가 겪을 허탈감이다. 이를 예방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전문가 상담(카운슬링)을 받아야 한다. 외국에도 없는 우리나라만의 선수보호 배려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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