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도 입학사정관제의 명암을 알아야
울산도 입학사정관제의 명암을 알아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2.2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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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현재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 지인(知人)이 학위 취득에 얽힌 일화를 들려 준 적이 있다. 미국 모 주립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경제’에 관한 학위 논문을 제출하자 미국인 논문 심사교수가 그 지인을 쳐다보면서 ‘한국 경제’에 관한 논문을 제출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 지인은 할 수 없이 3년 반 동안 준비했던 박사학위 논문 내용을 미국적인 것에서 한국적인 것으로 바꿔야 했고 그 바람에 2년 동안 미국에 더 체류했어야 했다고 한다.

그 미국인 교수가 한국적인 것을 요구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지인이 미국보다는 한국 경제에 더 정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또 그 연구 결과가 한국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다른 나라 신경 쓰지 말고 당신네 나라 경제나 연구해라’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교육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충격을 받고 앞으로 교육개혁 핵심과제들을 직접 챙기기로 했다.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대책회의를 신설해 매월 한 차례씩 직접 회의를 주재할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을 보면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 빚어진 인사비리에다 ‘알몸 졸업식’까지 불거지자 문제의 심각성을 통감한 것 같다. 그런데 대통령이 기존 교육을 개혁하겠다면서 가장 먼저 언급한 쪽이 입학사정관제 점검이다. 왜 대통령은 하필이면 시행된 지 2년 남짓한 이 제도부터 우선적으로 챙기겠다고 나섰을까.

현행 고입·대입 입시제도는 한마디로 ‘누더기 판’이다. 김대중 정부시절에서 참여 정부를 거쳐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 때마다 정책 입안자들이 내 놓은 입시정책으로 뒤범벅이 돼 있다.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신입생 선발 방식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저소득층 자녀 특별전형, 학교장 추천제, 입학사정관제,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 리더십 전형, 유공자 자녀 특별 전형, 전문계고 출신 직장인 특별 전형 등등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신입생 선발제도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더기처럼 겹쳐져 왔다. 반면에 비효율적이거나 불투명한 선발 방법이 정리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육에 다양성이 도입되면 개인의 능력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100m 달리기 경주를 할 때 나이에 따라, 또는 남녀 성별로 나눠, 혹은 몸무게에 따라 달리는 능력을 측정하면 개인이 지닌 고유능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반면에 이 방식을 개인이 악용하면 전체 질서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어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즉 나이를 속인다든지 몸무게를 감량하는 방법으로 개인이 측정에 임하면 전반적으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또 이런 규정을 적용하는 감독관의 재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도 있다.

지금 대통령이 입학 사정관제를 직접 거론하고 있는 것은 현행 입시제도 안에도 이런 장, 단점이 혼재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도 이 부분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 울산외고는 신입생 전원을 입학 사정관제를 통해 선발했다. 합격, 불합격의 기준은 전적으로 사정관들의 판단에 따라 만들어졌다. ‘중3 학업 성적은 전체에서 30등이지만 독후감 작문이 뛰어나 합격’된 경우가 그 한 예다. 아직까지 이런 결과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불만을 표시한 불합격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불만이 아직 표출되지 않았을 뿐 내재 돼 있다고 봐야한다. 항상 문제는 일정한 기간을 지나야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입시 제도를 좀 더 개선하고 다듬어 국내에 적용했더라면 입시전형이 지금보다 훨씬 간결했을지 모른다. 동시에 자라는 세대들에게 입시 피로감도 훨씬 적고 주고 그들에게 인성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을 수 도 있다. 그런데 외국 제도를 임의로 모방해 국내에 이식(移植)하려다 아이들은 벌거벗고 다니고 어른들은 그들을 향해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지를 상황에 이르렀다. 소 팔아 공부할 땐 전혀 없었던 분란이 요즘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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