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질
고자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2.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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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으로서 하는 일을 낮추어서 말하면 ‘선생질’이 된다. 선생노릇하기가 어렵다는 말과 선생질하기가 어렵다는 말은 어감(語感)이 다르다. 그래서 ‘XX질’하면 그 일을 낮추어 말하는 셈이다. 고자질도 고자(告者)의 행동을 낮추어 하는 말이다. 남의 잘 못이나 비밀을 윗사람 또는 책임자에게 일러바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 본질에는 건설적인 의미가 잠재해 있는데도 고자질의 순서에서 빠트리는 부분이 있어 이것을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미국의 시골 동네(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일)에서 발생하는 고발(告發)정신은 우리의 고자질과는 다르다. 법률용어로 고발도 고소(告訴)와는 뜻이 다르지만 기능(機能)으로서는 고자질과 같다. 미국의 고발정신은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적 풍토에서는 일러바치는 행동 자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딘가 비겁한 데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미국의 인구 10만이 체 안 되는 소도시, 빈민촌에서 이웃에 사는 백인 학생의 고물차를 빌려 이삿짐을 나르는데 시동이 걸리지 안았다. 홧김에 타이어를 발로 찼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시동을 걸어 이사를 마치고 저녁 늦게 차를 돌려주러 그 동네에 갔는데 그 친구가 웃으며 하는 말이 ‘Don’t be angry about my car.(내 차에 대고 화내지 마)’ 하며 자기 차의 타이어에 내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해 보이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계면쩍어 하면서 물었더니 ‘A near neighbour is better than a foreign friend.(가까운 이웃이 먼 나라 친구보다 나아)’라고 하면서 필자를 가리켰다. 필자를 가깝게 생각하여 사실대로 알려주는 내용은, 이웃에 사는 할머니가 이 친구에게 내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며 고발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종무시와 함께 고자질로 받아들여 불쾌했다. 우리는 주차해놓은 남의 차에 다른 사람이 펑크를 내어도 못 본 척 해버린다.

초등학교의 1학년짜리가 자기 짝이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왔다고 담임선생님께 고자질하였다. 선생님은 여러 번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오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왔었다. 그랬는데도 선생님은 핸드폰을 갖고 온 학생에게 아무런 꾸중이나 지도를 하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버렸다. 일러바친 꼬마한테도 착하다드니 어쩌느니의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일러바치는 장면을 다른 아이들이 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 꼬마는 그날로 방과 후 집에 올 때 왕따가 되었다. 그러고서 며칠이 지난 뒤, 이 꼬마는 나도 핸드폰을 학교에 가져가면 왕따를 면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와서 엄마를 졸랐다. 핸드폰을 사달고 때를 썼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짝이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와도 선생님이 혼내주지 않아!’이었다. 자조치종을 들은 그 꼬마의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돋보기로부터 교육상담을 받았다. ‘자모님, 가장 중요한 것은 꼬마한테 ‘어째 너희 선생님이 그럴 수 있느냐?’는 투로 아이 앞에서 선생님 흉을 보시면 안 됩니다. 지금 학기말이잖아요. 학교에도 레임덕이 있어요. 학기말이 되면 선생님들은 인계, 인수, 전근 등으로 정신이 다른 데에 가 있습니다. 이 점을 자모님이 이해를 해주시고요. 다음은 꼬마한테 할 이야기입니다. 그 집 꼬마가 나중에 커서 나라의 큰일을 맡게 되면 고자질 하는 부하 직원도 데리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도 조직 속에서는 back-bite라고 뒤에서 씹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를 대비하여 이것만은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네가 선생님한테 네 짝이 핸드폰을 갖고 왔다고 일러바치기 전에 그 애한테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오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느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는데도 핸드폰을 학교에 갖고 오면 그때 선생님께 일러야 한다고 말입니다.’ 고자질의 순서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이런 정신이 어려서부터 길러져야 고자질의 부정적 이미지가 사라진다. 이것은 나아가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한 가장 지혜로운 국민교육의 책략이 될 수도 있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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